뭐야, 돌려줘요.
https://youtu.be/Uv_W9ean1-A
1.
항상 음악을 듣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시절이라고 하기에는 꽤 긴 나날이었다. 아마도 인생의 2/3 이상인 것 같다. 잘 때도 음악을 틀고 잠들었고, 일어나면 그 음악이 이어서 들렸다. 꿈과 꿈 사이에도 음악이 들렸다. 어쩔 땐 꿈에서도 들렸다. 안에서도 들었고, 밖에서도 들었다. 밖에 외출 했는데 이어폰 안 가지고 나왔으면 밥 먹을 돈을 털어서라도 이어폰을 사고야 말 지경이었다.
2.
그 땐 글도 밥 먹듯, 아니, 음악 듣듯 썼다. 그 때 쓰던 글의 제목은 전부 글 쓰는 당시 듣고 있는 음악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한 곡에 빠져서 몇날 며칠을 그 곡만 듣는 시기엔 쓴 글 모두가 모조리 그 곡의 제목이었다.
3.
Cosmic Boy의 Love는 내게 오랜만에 찾아 온 그런 곡이다. 일년 반이 되도록 음악을 듣고 싶으면 가장 먼저 틀어둔다. 한 시간 연속듣기로. 쓰던 글의 제목을 듣고 있는 곡 이름으로 짓던 버릇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면, 일년 반 동안 쓴 모든 글들의 제목이 Love였을 것이고, 누군가 그걸 보았다면 사랑에 미쳐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4.
Cosmic boy의 Love를 들으면 심해속에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춥고 외롭지는 않다. 스펀지밥과 뚱이와 징징이와 집게사장은 아닐지라도, 해면과 불가사리와 오징어와 가재가 표정도 없이 말도 없이 내 주변을 떠다니며 맴도는 느낌. 그 안에서 나는 해파리가 되어 유영한다. 그거 아니? 해파리는 심장이 없대. 그렇지만 영원히 살 수 있대.
5.
해파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투명하게 들여다보이고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어서. 그런데 심장이 없는 줄은 몰랐다. 뭐야, 그런 말은 없었잖아요. 돌려줘요, 내 심장.
6.
저번에 온 게 사실 장마인 줄 알고, 장마가 가기 전에 물속에 있는 것 같은 곡을 써야지, 생각했었는데 못 해서 아쉬웠다. 근데 내일부터 다시 장마라고 한다. 태풍도 온다고 한다. 계약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서 심장이 없는줄도 모르고 해파리가 되어버린, 그런 억울한 해파리가 되어서 비가 콸콸 오는동안 Love를 대신해 내 하루를 채울 곡을 만들어야지. 사랑에 미친 여자라는 오명을 쓰지 않고도 내 습관을 되찾아 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곡 제목은 무엇으로 할까. 내 안의 심장이 없는 해파리가 사랑으로 하라고 한다. 뭐야, 그런 말은 없었잖아요. 돌려줘요, 내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