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게 행했으나 세상 기준의 보상이 없었던 일을 떠올려 보라.
잠언 10장 3-4절
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창조세계에는 질서가 있어 삶 속에 자연적 결과가 내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선행과 악행은 항상 각각 선하거나 악한 결과를 낳는가? '대체로 그렇지만 항상은 아니다'라는 게 중론일 것이다. 그러면 오늘 본문 같은 말씀을 어떻게 볼 것인가? 데렉 키드너는 이 말씀이 "논리적, 섭리적, 영적, 영원한" 관점 등 네 가지 관점에서 진리라고 역설했다.
첫째, "죄는 ...... 삶의 구조에 무리를 가해서 결국 붕괴를 부르고야 만다." 이기적으로 살면 기분은 좋을지 모르나 신체적, 관계적, 심리적 대가를 면할 수 없다.
둘째, "아무리 많은 곤경을 우리에게 허락하실지라도 하나님이 여전히 주관하신다." 그분은 요셉의 삶에 여러 나쁜 일을 허락하셨으나 다 목적이 있었다.
셋째, "의인은 세상적 형편과 무관하게 참으로 복된 자다." 삶이 고난으로 가득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그분의 가족으로 입양됐고, 성령이 내주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에 자리를 보장받았다. 모두 한없이 귀한 복이다.
넷째, "내세에 정의가 완성된다."
- 팀 켈러, 오늘을 사는 잠언, 159p(02/28)
Q. 당신이 옳게 행했으나 세상 기준의 보상이 없었던 일을 떠올려 보라. 위의 분석이 올바른 관점을 품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위의 네가지 관점을 생각하면, 주께서 옳다고 하신 일을 행하며 단기적으로 내게 어떤 결과가 닥칠지라도, 괴로워 하지 않고 전심으로 순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또 일이 닥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 역시 느낀다.
자세하게 적기는 어렵지만, 얼마 전, 충분히 부당하다고 느낄만한 상황이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날 내가 주님의 관점을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괜찮아,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불성실한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잖아. 다른 전체 사람들의 성실함과 진심을 담은 결과물이 더 많은데 이 한 사람의 사례로 기분나빠하지 말자." 라고 마음을 다독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괴롭게 한 그 한 사람의 불성실함이 무의식적으로 자꾸 생각나며 그 뒤로 한 이틀 동안 문득 문득 화가 났다. 화가 나는 중에도 "주님, 나의 부족함을 채워 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지만, 그 뒤에도 불쑥 불쑥 솟아나는 화를 느끼면서 꽤나 당황스러웠다.
알고 있음에도 행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올바른 관점을 알고 있음에도 그 관점으로 보지 못하고 나의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나 자신을 깨달으며, 순간 순간 은혜를 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돌아보며, 나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면서 조금은 마음이 슬펐다.
그렇지만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부족한 나라서,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또 분노하며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도와 묵상을 멈추지 않으며, 계속 주님께 은혜를 구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매일 매일 1mm씩이라도 주님과 더 가까워 질 수 있지 않을까? 주님과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부족한 내게 넘치는 은혜를 부어 주실 주님을 신뢰한다. 내가 아주 작은 보폭이라고 할 지라도 주님의 모습에 매일 매일 더욱 다가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