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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쏘 Nov 19. 2021

20211119 오늘을 사는 잠언

남을 인격적으로 대하기보다 눈을 부라리며 무시하고 싶었던 때는 언제인가?

잠언 1장 22절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오늘 본문 구절에는 세 부류의 미련한 자가 언급되어 있다. 사람이 지혜로워질지 아니면 미련해질지를 결정짓는 요소는 지력이 아니라 태도인데, 거만한 자(히브리어로 '레침')가 그 증거다. 거만함은 아무에게도 복종하기 싫어하는 넘치는 교만에서 비롯된다. 무엇이든 깎아내리며 그 과정에서 아주 독선적으로 아는 척하는 게 그들의 전략이다, 거만한 자는 실상 미련한데도 웬만한 사람 눈에는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아주 세련되어 보인다.
물론 세상에는 마땅히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도 있다. 하나님도 때로 비웃으신다. 그러나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으면 냉소와 조롱이 습관적 반응이 된다. 습관화된 거만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관계에 독소가 된다. "무엇이든 '꿰뚫어 봄'은 아예 보지 않음과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는 해체를 조장한다. 또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조롱과 멸시는 쉬워졌고 논리적 대화는 어려워졌다. 우리는 똑같이 거만해지라는 엄청난 문화적 압박을 물리쳐야 한다. 예수님이 여기에 뚜렷한 대조가 되신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때까지 하리니"

- 팀 켈러, 오늘을 사는 잠언, 01/08


Q. 남을 인격적으로 대하기보다 눈을 부라리며 무시하고 싶었던 때는 언제인가?


어제 친구들과 대화하던 중에 대선주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 얘기가 나오자 마자부터 정말 온 몸으로 대선주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표출했다. 그들을 판단했고, 조롱했고, '천박하다', '교활하다', '하이에나 같다' 등의 표현을 써서 너무 싫다고 여러번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판단 할 정도로 그들을 잘 아는가? 그들을 냉소적인 눈으로 보면서 조롱하는 것이 나에게 습관이 되지 않았는가? [무엇이든 '꿰뚫어 봄'은 아예 보지 않음과 같다.]는 본문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나는 어쩌면 눈 뜬 장님일수도 있다. 그들을 꿰뚫어 볼 통찰을 갖추기 전에 나는 그들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았는지를 생각하면, 나 역시도 framing 된 자료들을 가지고 피상적으로 그들을 알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내 기준에서 도덕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결함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판단한다. 그러한 냉소로 지혜를 가장하지 않기를 구한다. 본문의 기도처럼, 그런 일그러진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기를 구한다. 아무도 멸시하지 않고 모두를 존중하며 상대의 잘못을 지적 해 줄 때도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기를 전심으로 기도한다. 그리하여 나의 입술과 나의 표정과 나의 생각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매일, 매 순간 더욱 주님을 닮아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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