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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쏘 Jan 13. 2022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 근본적인 변화

20220113 오늘을 사는 잠언

잠언 1장 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 예수님을 믿으면 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대신 지혜의 근본인 경건한 두려움이 싹튼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법적 형벌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악을 진정으로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냥 벌을 모면하려는 타산적인 이기심에서가 아니다. 벌에 대한 공포는 자신이 다칠 것을 걱정하는 자아도취에 불과하다. 참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그분을 깊이 우러르기에 즐거이 그분을 섬긴다. 사랑에서 난 이런 두려움은 "설령 지옥이 없더라도 그분을 욕되게 함 자체에 몸서리친다."
- 노예 수준의 이기적인 두려움과 참으로 여호와를 두려워함의 차이는 한낱 도덕주의자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차이와 같다. 그분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지혜로운 생활도 없다. 그분을 사랑해서 순종하는 관계라야 한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볼 수만 있다면, 겸허해지면서도 확신을 품고 기쁘게 여호와를 경외할 수 있다.

- 팀 켈러, 오늘을 사는 잠언, 02/10


Q. 당신이 죄를 삼가는 주된 이유는 죄의 결과가 싫어서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욕되게 하는 죄 자체가 싫어서인가?


오늘 아침 인스타그램에서 지인의 강아지가 공을 삼켜 위급하다는 소식을 보았다. 지인은 좋은 마음으로 강아지와 공던지기 놀이를 했는데, 너무 신이 났던 강아지가 공을 삼켜버린 것이다.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자 공이 선명하게 보여 당장 공을 제거해야 했는데, 구토 유발을 해도 강아지가 공을 뱉어내지 않아 긴급하게 개복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수술을 하기 전, 구토 유발을 해도 공을 토해내지 않는 강아지를 보면서 놀랍게도 나의 지인은  '나에게 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토하지 않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리드 줄을 풀고 강아지가 자신을 볼 수 없도록 동물병원 기둥 뒤에 숨었더니, 놀랍게도 강아지가 지인이 보지 않는 곳에서 공을 토해 냈다! 나의 지인은 평소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기에, 위급한 상황에서 강아지의 심리를 파악하고 지혜로운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교만과 자아도취'의 죄를 짓는 내가, 이 강아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만드셨고, 세상에서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이룰 수 있게 달란트를 주셨다. 그리고 나의 삶의 매 순간마다 섬세하신 손길과 도우심으로 나의 삶을 이끌어 주신다. 따라서 내가 숨 쉬는 것 하나도 모두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다.


그러나 내가 아주 작은 일에서라도 주님의 손길과 도우심을 잊고 그 공을 나에게 돌리는 교만함의 죄를 저지른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프실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여러가지 선물을 주셨는데 그 선물을 받는 내가 미련하여 오히려 교만함의 죄를 짓는다면,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강아지를 사랑해서 강아지와 공놀이를 했는데 너무 흥분하여 공을 삼켜버린 강아지를 바라보는 나의 지인의 속상하고 안타까운 심정과도 그 결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족하여 지혜없는 행동과 말을 할 때가 많은 나를, 하나님은 관심과 사랑으로 바라보신다. 그리고 현명한 나의 지인처럼, 나에게 꼭 맞는 말씀을 매일 주시며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신다. 이런 주님의 손길을 느낄 때, 나 역시도 주님의 임재를 더욱 강하게 느끼고, 그런 주님을 더욱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커진다. 


나에게도  '교만과 자아도취'의 좋지 않은 결과인 '미움받음, 관계의 단절' 을 두려워하며 그 행위를 삼가는 마음 이전에, 좀 더 본질적인 수준에서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왔음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먼저 있기를 구한다. 내가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함이, 그 행위로 인한 결과 때문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임을 내 온 마음을 다해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한다. 


오늘도 어리석음과 죄를 뒤집어 쓴 나를 온전히 정결케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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