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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남 Nov 05. 2023

나의 낙서 연대기

낙서도 꾸준히 하다보니 30년이 넘었습니다.

나의 첫 낙서는 아빠가 사준 전래동화 전집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모두가 한 벌 쯤은 있던 알록달록한 예쁜 일러스트가 가득한 동화책.

글을 읽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 안의 그림들을 들여다보는 게 어린 저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어요.


전래동화 책을 펼치면 앞 뒤로 하얗게 비어 있는 내지마다

알록달록 크레파스, 엄마가 가계부를 적는 볼펜, 연필 할 것 없이

온갖 낙서를 잔뜩 그려놨었고

빈 공간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어린 미남이는

일러스트가 있는 책 안쪽까지 공주님 그림, 꽃 그림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학창시절에도 교과서 빈 공간마다 온갖 그림과 낙서로 가득 채우는 친구들 꼭 한둘 씩은 있죠?

그게 바로 접니다.

그림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낙서 치곤 제법 잘 그렸고, 학교에서 여는 그림 입상 대회마다 

꼭 학교 대표로 참가하여 상을 받아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대에 가거나 미술 전공을 하고 싶었고, 대학 진학 전에는 진지하게 진로 고민을 하며

입시공부를 하고 싶다고 단식투쟁도 했습니다. 만

텍스타일 디자인을 하신 엄마와, 그런 디자이너들의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원단 제작 하는 아빠의 완강한 반대 때문에 저는 평범하게 수능을 치르고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갔어요.


 


그렇게 점수에 맞춰 갔던 곳은 인도어과 입니다.

그 어떤 것도 딱히 하고싶은 게 없었던 지라 다른 학과나 학교 진학을 위해 재수할 용기도 의지도 없었고요.

빨리 대학생이 되서 놀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운명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인도어과에 진학한 이후 저는 인도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인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난 걸 보면 저는 꼭 인도어과를 갔어야 했었나봐요.

그리고, 오랜 시간 이어온 저의 낙서도 인도를 만나 큰 변화를 만났습니다.



인도 여자 아닙니다. 학부 시절의 저 입니다. 20년 전이네요.

인도어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인도 춤을 배우고 학과 활동 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왼쪽 사진은 인도 춤 학회 활동을 하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현지인이냐고 물어봤던 때의 사진이고

오른쪽은 학회 활동 중 하나로 헤나를 했던 사진입니다.

학교다닐 때도 "그림 좀 잘 그리는 애" 다 보니 대학교 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과를 대표해서 저는 헤나 시연을 하고 박람회도 참가했었답니다.

손등의 헤나도 제가 직접 그렸던 거에요.




인도 곳곳에서는 이러한 패턴이나 화려한 색감을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매료되었던 것은 학부시절 접했던 인도영화에서였고요.

헤나를 하면서 더 다양한 패턴과 그림들을 접하게 되었고

결혼 후 신혼생활도 인도에서 하다 보니 더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위 그림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 무엇도 할 것이 없던 시절 그렸던 첫 낙서입니다.

낙서는 저에게 훌륭한 태교가 되었어요.

딸아이의 교과서도 제 학창시절의 책과 비슷합니다.

낙서 없는 페이지가 없을 만큼 그림그리는 걸 좋아하는 딸아이가 태어났어요.




스물 셋,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오직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로 용감하게 결혼을 선택했고

스물 넷 출산으로 육아가 시작되었습니다.

경력 단절이랄 것도 없이 저에겐 경력도 없었고, 주변의 모든 친구들은 취업을 하고

자기의 삶을 멋지고 바쁘게 꾸려나가고 있는 걸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시작된 결혼생활과 육아로 저는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이것도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울증이었던 것 같아요. 제 마음이 아프다는 걸 전혀 몰랐으니까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안에 있었던 기분이 5년 정도 지속되었어요.

그때마다 저를 붙잡아 준 건 낙서였습니다.



몰스킨 노트에도, 이면지에도

독학으로 익힌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로 가득 그렸습니다.

낙서를 하다보니 저에게 다양한 기회도 열렸지요.

뭐든 꾸준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지금도 열심히 낙서는 진행중입니다.


다양한 낙서를 공유해보겠습니다.

낙서의 히스토리와, 제 마음을 다스렸던 그 과정도요.

저는 30년 경력의 프로 낙서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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