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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남 Nov 13. 2023

낙서꾼의 전시회 (1) Lady Ganesha



오늘은 프로낙서꾼의 과거 이야기입니다.

낙서치고는 좀 유난한 그림이기도 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제 그림 중 하나를 소개해 드릴게요.







2015년 봄, 아트리에갤러리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단체전도 아닌 무려 2인전이었어요.


소소하게 단체전에 한두 작품 출품해서 전시한 적은 있었지만

저와 다른 작가분 딱 두 명만의 작품으로 전시를 한다고 하니 무척 긴장도 되고

설레었던 기억이 남아있네요.

하필 그 당시 신종 독감이 엄청나게 유행을 해서 참 아쉬웠지만 말입니다.


미술을 배워본 적도 없고,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로 미술학원도 다녀본 적 없었던지라

먼저 갤러리에서 연락이 오고 전시를 할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제 꿈에 한 발 다가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 물론 그 꿈은 아직도 ing 입니다.





낙서가 유일한 출구였던 그 당시에 무슨 이유에서 인지 캔버스에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졌습니다.

제 기억엔 아마도 커다란 캔버스에 얇은 펜으로 화면을 가득 채워나간 밥장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막연히 저도 해보고 싶단 마음에서 시작됐던 것 같아요.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화방에 가서 제법 큰 사이즈의 캔버스들과 아크릴물감을 잔뜩 사왔어요.

그리고 망설임없이 캔버스를 채워나갔습니다.


전시했던 그림 중 가네샤를 소재로 했던 그림인 Lady Ganesha 입니다.



원래 가네샤신은 얼굴이 코끼리이고 상아 한 쪽이 잘려나갔으며, 몸은 사람이지만 팔이 네 개,

그리고 배가 풍만한 아저씨 신입니다.

인도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신이기도 하고요.

덩치는 엄청나면서 쥐를 타고 다닙니다.

손에 쥐고 있는 물건도 다 다른데 각자가 그 나름의 의미와 상징이 있어요.


인도에서 가네샤가 유독 더 인기가 많은 신인 이유는

바로 부와 성공을 가져다 준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에서도 수능 시험 보기 전엔 엄마들이 열과 성을 다해 자식을 위해 기도를 하며 정성을 다하듯

인도에서도 자녀가 큰 시험이나 취직을 앞두고 있으면 가네샤 신에게 자녀의 성공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작은 구멍가게를 가더라도 손님들 눈에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가네샤 신상이나 그림이 걸려있어요.

그만큼 가장 세속적이고 바쁘며 인기가 많은 신입니다.

인도사람들이 가네샤를 여신화 한 걸 보면, 아니 그것도 모자라 부엌떼기 느낌도 나게

밥주걱 들고 있는 걸 보면 기절할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만.


가네샤라는 주제를 선택해서 그린 이유에는

인도인들이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같은 내 마음이 투영되서이기도 해요.

아, 물론 저도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 큽니다 커요.

한 손에는 밥주걱을, 또 다른 한 손에는 붓을 들고 있습니다.

머리가 치렁치렁 한 보따리인 이유도 있습니다.

나름 그 시절 제가 느끼던 삶의 무게 같은 거랄까요.

그 무게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지금 보면 치렁거리는 머리칼도 예뻐보이네요.


사실 저는 머리 관리하기도 귀찮아서 아주 짧은 머리를 고수하고 있는데, 그림속의 가네샤는

긴 머리를 한껏 틀어올리다 못해 아래로도 한창 늘어뜨리고 있어요.

이고 지고 감싸보고 묶어봐도 안되는 건 그냥 내버려둡니다.

손이 네 개나 되는 데도 모든 손에는 버릴 수 없는 자존심도 꼭 붙들고 있습니다.

허영도 있고, 여유도 있고, 희망하는 바도 있어요.




누가봐도 이 레이디 가네샤는 무척 바빠보입니다.

제 모습을 투영해서 그린 가네샤 시리즈 중 하나에요.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을 다시 볼 때마다 

한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엄마로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떠오르고

그래도 그 시간을 그림으로 위안 삼으며 잘 지내온 나 스스로가 대견합니다.

지금은 더 바쁘지만 마음의 여유와, 언젠가는 뭐라도 될 거라는 그 기다림이

힘들지 않고 즐겁습니다.

저는 계속 손을 움직일걸 알기 때문인가 봅니다.

 




낙서로 시작된 그림인데

종이에 펜으로 그리던 걸 캔버스로 옮기고 용감하게 물감도 써서 그려봤습니다.

새로운 시도였고, 그런 내가 왠지 멋져 보이던 날이었어요.

모두 잠든 새벽 나 홀로 오직 붓과 물감과 한 몸이 되어 보낸 시간은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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