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봐 주는 인연
25년 9월은 내게 여러모로 특별한 시기다. 우선, 내가 호기롭게 직장을 그만둔 지 정확히 2년이 되는 달이다. 나는 전 직장에 1년에 두 번 인사를 드리는데, 설 명절과 추석 명절이 그렇다. 올해도 어김없이 인사를 드리고 보니 다들 “벌써 나간 지 2년이 지났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그만두는 것도, 그리고 그만두고 잘 해내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인데 둘 다 잘했으니 보기 좋다는 덕담을 들었다.
25년 9월이 내게 또 특별한 이유는, 내가 쇼호스트 데뷔 이래 가장 많은 방송을 진행한 달이기 때문이다. “살림 좀 나아졌냐” 누가 묻는다면 씨익 웃으며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결혼식 성수기와 방송이 함께 늘어나며 행복한 한 달을 보냈다. 백수가 갑자기 일하면 몸이 아프다고 한다. 남들에게는 일상인 일정도, 놀고먹던 내게는 몸살이 날 만큼 힘들었지만 한 달 내내 내 입가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왜 갑자기 방송이 늘었을까 스스로 고민해 보던 중, 결국 시간 그리고 사람이 답이었구나 생각했다. 누구나 어딘가에 계속 기웃거릴 수만 있다면 한두 번쯤은 기회가 온다. 다만 생계가 걸린 프리랜서는 언제까지나 기웃거릴 여유가 없다. 나는 모종의 행운으로 2년 정도 이 바닥을 기웃거릴 수 있었고, 때론 땜빵으로, 때론 나름의 경쟁을 거쳐, 때론 콜드메일을 날려가며 나를 알렸다. 아무 반응 없던 내 낚싯대에도 약간의 진동이 온 게 9월이구나 생각했다.
어떤 분야에서든 성장의 결과는 절대 꾸준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가 아주 조금 튀고, 또 다시 아무 반응 없이 조금씩 튀는 식으로, 나도 모르게 성장은 이뤄지는 것 같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한다면, 내가 줄 수 있는 조언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원론적인 답변이나,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어떤 방송이든 최선을 다하라. 방송에도, 사람에게도. 그리고 그렇게 해도 아주 오랜 시간 아무도 몰라줄 것이다. 최선의 준비를 했다고 해서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아는 쇼호스트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노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더라. 10번의 기회가 오면 어쩌면 1번쯤은 누군가 나를 믿어주더라. 정말 가끔, 누군가는 ‘저 녀석이 오늘보다 내일은 더 잘하겠는데’ 하며 기회를 주더라. 마치 우리는 만나기 위해 이전 시간선을 걸어온 것 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나는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그 인연을 더 믿게 된다. 이 지독한 확률게임에서 지치지 말고, 오늘도 그냥 해내다 보면 누군가는 또 당신을 알아봐 주리라. 무책임하고 두루뭉술한 조언임에도 어쩔 수가 없는 건 세상사가 정말 그렇더라.
내가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여전히 ‘그 무엇인가’가 되지 못한 미생의 쇼호스트다. 완성의 날이 언제일지, 그런 게 있기는 한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나도, 당신도 또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우리도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마주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