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쇼호스트 성장기 (13)

비어있는 달력이 무섭지 않아!

by 허성현

프리랜서의 삶은 달력을 보는 일이다. 오늘, 내일, 이번주, 다음주 매일 달력을 보며 일정을 체크한다. 프리랜서의 행복은 보통 꽉찬 달력을 볼때 시작되고, 반대로 악몽은 비어있는 달력에서 시작된다. 최근 나는 전 처럼 비어있는 달력에 불안해하거나 무서워하진 않는데 그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아직은 가을이지만 방송가에는 겨울 시즌 상품의 호황기가 왔고, 그 흐름에 편승해 나도 내 기준에서는 굉장히 많은 방송을 하며 바쁜 몇 주를 보냈다. 지난 몇 주간은 이런 날들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 주는 제법 한가한 주중을 맞이하게 되었다. 뭐 또 급하게 여러 개의 방송이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최근에 이렇게 방송이 적었던 적이 없어서 잠시 당황스럽기도 했다.



비어 있는 달력을 보며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쩝쩝 다시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참 감사하다. 최근 내 방송량을 견인했던 브랜드가 방송을 줄인 건지, 내가 투입되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이라면 그저 아쉬웠을 것들이 지금은 ‘그래도 지난 몇 주간 행복하게 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찌 보면, 내게서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 줄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것도 있다는 것. 어느 날 갑자기 행운처럼 온 기회가 다시 가면, 또 새로운 기회들이 내게 올 것이라는 걸.



스케줄이랄 것이 전혀 없던 그때, 나는 참 많이 불안했었다. 직장인 특유의 ‘놀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이 몸에 배어 있었던 걸까? 남는 시간을 채우려고 정말 노력했다. 할 게 없어도 카페에 앉아 있었고, 블로그를 열어 무슨 글이라도 적었다. 잠깐이라도 여유 시간이 생기면 핸드폰을 들어 세상의 모든 라이브 방송을 모니터링하며 공부하기도 했다. 그 당시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할 때도 나는 음악 대신 라이브 방송을 음악 삼아 운동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비록 느리더라도 성장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의 나는 비어 있는 스케줄이 다행스럽게도 무섭진 않다. 조금 아쉬운 건 있지만, 저 비어 있는 날들도 조금씩 일정으로 채워지리라는 걸 믿기도 하고, 그 시간들이 또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것도 알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다면 나는 운동을 할 것이다. 조금 더 집안일에 신경 쓰고, 사랑하는 이준이와 시간을 보낼 것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블로그와 SNS에도 시간을 쓰며 포트폴리오를 리뉴얼할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책도 읽고, 내가 좋아하는 사우나에 가서 몸을 쉬게 할 여유도 만들어줄 것이다. 지금껏 이룬 게 많지는 않지만, 그 작은 성과들은 비어 있던 시간 속에서 나왔다고 믿는다. 너무나 다행히도 지금의 나는 비어 있는 달력이 별로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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