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수영 Jul 24. 2018

함부로 정의를 추구하지 마라

너는 평생 티없이 맑게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함부로 정의를 추구하지 마라. 옳은 말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너는 평생 티없이 맑게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때도 묻게 된다. 대체적으로 진실을 추구하고 전반적으로 옳게 살아가더라도 사람이 한없이 맑을 수는 없다. 당장 지금 떠올려 보거라. 너는 그렇게 떳떳하느냐. 내가 알기로 그렇게 오래 살지 않은 너도 벌써 실수도 잘못도 많이 해 왔다. 나는 너를 세상에 낳은 순간부터 너가 숱한 실수와 잘못을 하는 것을 봐 왔다.


너가 패기있게 설레는 마음으로 더 나은 세상을 부르짖는 순간, 세상은 너에게 더없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말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 한직에 머물러 있을 거라면 그나마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심을 품고 크게 나아갈 거라면 말을 아껴라. 사업하는 놈이면 조용히 돈이나 벌어라. 쓸데없이 세상을, 도의를, 역사를 입에 올리지 마라. 깨끗함을 들먹이는 순간 사람은 살면서 크나큰 수치를 겪을 수밖에 없다. 내가 너를 제대로 키웠다면 너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그러한 수치를 이겨낼 수 없는 법이다.


틀린 구석 하나 없는 말이라 몹시 슬펐다. 선의를 드러내는 순간 유례없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 세상에선, 누구도 쉽게 선의를 품지 않을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이나 선의를 부르짖다 크게 상처받을 것이다. 변방에서 머물 사람들이나 선의만 외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후안무치한 사람들이나 선의를 내세우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제 잇속들만 챙길 것이다.


정말로 선의를 품고자 하는 현명한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뭔지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말을 아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세상은 무지하거나, 치사하거나, 뻔뻔한 사람들의 입에서만 정의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쉬운 번역, 누굴 탓하면 좋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