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을 보고
(스포가 있어요!)
<어느 가족>. 인생 첫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지금까지 본 영화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좋았다. 인간사의 다면적인 모습을 애정을 가지고 아름답게 풀어냈다. 각자의 서사를 잘 들여다보고 따라가다 보면 살인과 시신 유기, 절도, 유괴마저도 존엄한 인간 삶의 한 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두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생판 남인 아이의 아픔을 두고볼 수 없어 데려와 정성을 다해 보살핀 사람과 계속 연금을 받기 위해 같이 살던 노인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집 안에 묻어버린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역시 생판 남인 아이에게 진정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사람과 경찰에 잡힐까봐 그 아이만 두고 도망치려 했던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보여줬던 선의와 애정은 모두 진심이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보여줬던 비정함과 비겁함, 그리고 이기적인 태도 역시 그들의 진짜 모습이었다. 삶은 이토록 다면적인데,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타인을, 세상을,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쉽게 판단하며 사는가.
영화 속 기자나 검사의 시선으로 ‘가족’을 바라보면 그들은 기괴하고 불쌍하고 비극적인 범죄 집단이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으로 이 가족을 바라보면 아름답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한 사람들이 된다. 여러 가지 맞는 시선 중 어느 시선을 선택할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우리네 삶의 비루함까지 껴안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사람들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은 모범적인 삶을 권장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조금 더 많은 선택지를 주는 세상이어야 한다.
‘세상을 더 지적으로’ 만든다는 건 사람들이 우리 삶에 더 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다, 다만 이런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는 자유를, 타인의 삶에는 존중을 더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더 친하게’ 만든다는 건 우리가 <어느 가족>을 보고 등장인물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듯, 다양한 삶의 아름다움을 머리가 아니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해야 한다.
물론 누군가가 내 물건을 훔치면 신고하고 벌 받게 하고 돌려받아야 된다. 나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피해가 가는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어쩌면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격투기 선수가 링 위에서 만난 상대방을 있는 힘껏 때려눕히되 경기가 끝난 뒤에는 존중을 담아 포옹을 하듯,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악연에 대해서도 우리는 조금 더 애정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투쟁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받았다. 칸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상.
*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영화를 통해 “혈연이 아닌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 일본어 원제는 <만비키 가족>이다. ‘만비키’는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는 척하면서 도둑질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단어.
* 아버지 역할을 맡은 릴리 프랭키는 이번이 벌써 네 번째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릴리 프랭키를 두고 “인간 속에 있는 작지만 나쁜 부분, 조금은 한심한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능숙하다”고 했다. 감독피셜 영화에서 유일하게 성장하지 않는 역할. 이 영화를 위해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소통할 때는 손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우편 보내기엔 귀찮으니까 사진 찍어서 메신저로 보냈다고.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다음 작품에는 에단 호크와 줄리엣 비노쉬가 나온다고 한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트레바리 클럽장으로 모시는 날도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