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우면서도 몸서리치게 설레는 요즘이다
트레바리는 왜 지금까지 투자를 받지 않았는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1. 투자금을 열 배 이상 불려서 돌려줄 자신감 또는 의지가 없었다. 벤처투자금은 위험자본이다. 은행에 예금을 하거나 채권을 사지 않고, 부동산을 사거나 상장사의 주식을 사지 않고 굳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큰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큰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다. 투자를 유치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태까지는 확신이 없었다. 우리가 열 배 이상 클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었고, 설령 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런 의지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었다. 모든 기업이 꼭 상장을 향해서 달려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2. 자본시장의 플레이어가 된다는 것에 대한 각오가 충분히 서지 않았다. 왜 애플은 악착같이 일해서 수십 수백 조를 벌어놓고 그 돈을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는 데 쓸까. 왜 세상을 연결하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마크 저커버그는 광고 수익을 늘리기 위해 좋지 않은 사용자 경험을 묵인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상장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본시장은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주주 가치를 최우선으로 할 것을 강하게 주문한다. 그러니 자본시장의 일원이 되려면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명제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의지가 있어야 한다.
3. 혼자서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트레바리는 창업하고 3년 반 정도 되는 기간 동안 50배 이상 성장했다. 첫 8개월 동안 혼자 일했는데 어느덧 20명이 넘는 팀이 됐고, 1년 반 전만 해도 압구정 한 곳에만 있던 아지트는 어느덧 세 개가 됐다. 그 동안 막막할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주위에서 천금같은 조언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고, 개인적으로 약간의 빚을 지긴 했지만 열심히 일하다 보면 충분히 갚을 수 있을 만큼의 재무 건전성은 유지해올 수 있었다. 빠르게 달려나가기 위해 반드시 수십억의 자금 또는 베테랑 투자자의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투자를 받기로 결정한 것은 당연하지만 위의 세 가지 이유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을 확실히 했고, 열심히 하고 운만 따라준다면 꽤 멀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자본시장의 한가운데에서 피말리게 쪼여보는 것도 이 시대에 살면서 한번쯤은 겪어봄직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돈이 있으면 조금 더 빠르고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운 좋게 혼자서도 잘 해왔지만, 앞으로는 경험도 많고 네트워크도 짱짱한, 그러면서도 내부 사정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밝은 동반자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에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이은우 상무님과 패스트인베스트먼트의 박지웅 대표님을 만나게 됐다. 큰 꿈, 풍부한 경험, 날카로운 지성, 건강한 도덕성을 지닌 분들이라고 생각했고, 감사하게도 트레바리의 비전과 성장 가능성을 좋게 봐주셨다. 이 분들과 함께라면 - 개인적으로 소프트뱅크벤처스라는 회사보다는 이은우라는 사람에게, 패스트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보다는 박지웅이라는 사람에게 투자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우리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변화를 더 크고 더 빠르게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를 받음으로써 트레바리는 내릴 수 없는 열차에 올라탔다. 이렇게 된 이상 진정성을 잃지 않은 채 지금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면서도 담대하게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만들어나가보려 한다.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잦은 고통과 시행착오를 겪게될 거라 두려우면서도 몸서리치게 설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