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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Jul 06. 2019

리셋 증후군과 정면돌파

문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리셋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충동에 맞닥뜨린다. 얼핏 보기에는 그게 가장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과 이해관계자들에게서는 도무지 개선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거나, 지나치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반면 아직 경험하진 않았지만 다른 관계와 환경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 새로운 친구, 새로운 커리어, 새로운 다이어리. 그래서 끝내고, 떠나고, 끊고, 바꾼다. 그리고 대개는 다시 비슷한 문제에 맞닥뜨린다.


우리는 여러 차례 리셋을 반복하고 나서야 리셋이라는 솔루션의 한계를 알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기회가 없어져서는 아니다. 기회는 언제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찾거나 잡지 않거나 못할 뿐이다. 다만 리셋을 거듭하면서 문제를 직시하는 게 점점 더 부담스러워질 뿐이다. 직시한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도 점점 더 고통스러워진다. 리셋하는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리셋을 거듭하는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시작의 설렘과 달콤함에 중독된다. 가능성을 즐기는 삶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설상가상으로 그간 리셋을 거듭하면서 쌓인 시간은 우리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매매를 거듭하다 돈을 날릴수록 ‘이번에야말로..!’를 외치게 되는 주식투자자처럼. 부담이 크다 보면 선택은 점점 무난해지고, 무난한 선택은 무난한 리턴을 가져온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무난한 리턴에 적응하거나 불만족하게 된다. 적응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만약 불만족한다면 이런 류의 불만족은 쉽게 분노, 냉소, 삐딱함, 왜곡으로 이어진다.


문제의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탓하기 쉬운 걸 탓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연인의 문제라면 이별해도 괜찮지만, 연애의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회사의 문제라면 퇴사해도 괜찮지만, 직장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해심 부족한 친구의 문제라면 절교해도 괜찮지만, 지나치게 까탈스러운 나의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리고는 뚫어야 한다. 바로바로 속시원하게 뚫리는 문제는 흔치 않기 때문에, 버텨야 한다. 뚫는 법도 버티는 법도 처음부터 아는 건 아니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 물론 세상에는, 시장에는, 타인에는 많은 문제가 있고, 우리는 분명 구조와 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바뀌기를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만은 없다.


언제나 정면돌파는 장기적으로 보면 가장 덜 고통스럽고, 가장 빠르고, 가장 깔끔하다. 요즘처럼 단기적인 자극이 난무하는 시대에서는, 조급함처럼 무서운 게 없고 끈기만큼 든든한 게 없는 것 같다. 단기와 장기는 생각보다 치열하게 충돌한다. 그나저나 사람들을 더 단기적인 자극에 몰입하게 만든 잡스와 손정의 같은 사람들일수록 더없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끊임없이 정면돌파를 해왔다는 건 꽤나 의미심장하다.


요즘의 나한테 타이르듯 쓴 일기의 일부. 이 글이 수많은 불합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과 인내를 요구하는 글로 읽히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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