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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Jul 13. 2019

나쁜 것을 싫어하는 삶, 좋은 것을 좋아하는 삶

"컬트는 반대쌍에 대한 공격을 통해 비로소 컬트가 된다. 트럼프 컬트는 클린턴과 뉴욕타임즈에 대한 공격을 통해, 비트코인 컬트는 법정화폐과 알트코인에 대한 공격을 통해, 테슬라 컬트는 석유 자동차와 공매도 세력에 대한 공격을 통해 컬트가 된다. (...) 오늘날 혐오를 느끼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소셜 미디어를 켜면 우리의 혐오를 자극하는 소식들이 쏟아져 나온다. (...) 무언가를 함께 좋아할 때보다, 무언가를 함께 싫어할 때 집단은 더욱 결속된다. 싫어하는 것으로 뭉친 집단은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를지라도 뭉친다. (...) 혐오를 자극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컬트에 더욱 깊게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컬트에 빠져든 사람들은 더욱 컬트의 집단 사고에 익숙해지게 된다. 즉 혐오는 집단 사고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무언가를 혐오하면 할수록 우리는 집단에 더욱 종속되게 된다." - 주영민


나쁜 걸 싫어하는 것에서 주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과 잘 지내기 힘들어한다. 악이 있어야지만 선할 수 있고, 적을 만들어야지만 아군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힘들어한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잘못되었다’라고 규정하려면 꽤 많은 논리적 뭉갬을 필요로 한다. 무언가가 아니라 '누군가'가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려면 훨씬 더 뭉뚱그려 생각해야 한다. 이런 단순화를 힘들어한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어야지만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부득이하게 계속해서 불합리와 부조리를 찾아야 한다. 안 그러면 삶이 무기력하고 권태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별 것도 아닌 것에 맞서 싸우면 너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이왕 무언가를 싫어할 거면 그건 매우 나쁜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싫어하기 위해, 그리고 싫어하는 것을 나쁜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힘들어한다.


나쁜 것을 싫어할 때의 가장 큰 보상은 같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다. 이렇게 적을 공유함으로써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분노와 싫음으로 엮인 배타적인 관계는 유독 끈끈한 경향이 있지만, 그 끈끈함만큼의 적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나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삶의 에너지를 분노에서 얻지만, 좋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삶의 에너지를 호기심에서 얻는다. 이게 잘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걸 알아내면 얼마나 흥미로울까? 저기에 다다르면 얼마나 뿌듯할까? 아, 이 산을 넘지 못했을 때 겪게 될 고통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이 산을 넘었을 때 보게 될 풍경에 설레하는 삶은 얼마나 희망찬가! 호기심이 꽂히면 관심이 되고, 관심이 길어지면 애정이 된다. 세상을 사랑으로 뒤덮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우월한 삶의 태도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분명 옳지 못한 것이 있다. 전쟁이 그렇고, 지구 온난화가 그렇고, 극도의 가난함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옳지 못한 것과 싸우는 사람들의 정의로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을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나쁜 것을 싫어하는 것은 좋은 것을 좋아하는 것보다 힘이 세다. 빅히트의 방시혁 대표도 말했듯, 분노는 한 사람의 인생을, 한 회사의 성장을, 한 사회의 변혁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좋은 것을 좋아하는 삶의 에너지도 강렬할 수 있을지, 비슷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도 굳은 연대감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늘 나의 고민거리다.)


다만 나는 그저 좋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밝고 명랑함을 선호하면서 살고 싶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비장하게는 못 살겠다.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는 못 살겠다. 나는 그렇게 화내면서는 못 살겠다. 나는 그렇게 미워하면서는 못 살겠다. 나는 설레하면서, 궁금해하면서, 좋아하면서 살고 싶다. 쟤가 구려진다고 내가 멋져지는 건 아니다. 맛없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은 아니다..고 늘 생각하지만 뭔가 이 글 다시 읽어보니까 계속 뭐 싫다고 하고 있어..!ㅋㅋ


저와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이인 주영민과 토크 콘서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영민이 최근에 쓴 책 <가상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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