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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Feb 26. 2016

일상을 여행으로 만들자

여행을 일상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여행처럼 좋은 게 없다. 기술이 지나치게(?) 발전하는 바람에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와도 ‘메일로 자료 보내드렸습니다’ 따위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시대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행은 최고의 합법적인 일탈 수단이다. 무엇보다 여행을 떠나오면,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뀐다. 멀리 떠나올수록 그렇다. 적어도 여행지에서만큼은 죄책감 없이 나에게 마음껏 관대해질 수 있다.


아이들은 항상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닌다. 신기한 게 너무 많아서 그렇다. 궁금한 게 많고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어른들은 아니다. 너무 똑똑해져서 모르는 게 없다. 하루하루가 단조롭기 그지없다. 맨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일을 하고,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오늘도, 내일도 산다.


그런데 여행을 가면, 순식간에 아이가 될 수 있다. 여행지는 낯설다. 그래서 신선하고 흥미롭다. 게다가 마음껏 호기심에 자신을 내맡길 수도 있다. 일상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굳이 촌스럽게 호들갑 떠는 꼴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다들 익숙하게 잘 살고 있는데, 왜 또 혼자 모르는 게 생겨서 꼬치꼬치 캐묻고 사나 싶게 된다.


그래서 여행을 간다. 차곡차곡 아껴왔던 월급과 휴가를 모아서 비행기를 탄다. 엔화가 싸졌으니 일본에 가기도 하고, 영원한 로망인 유럽으로 가기도 한다. 요즘엔 주말을 빌어 제주도로도 많이 간다. 최근 몇년 사이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세련된 도시 문화도 더해졌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을 하다 보면,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친구가 올린 여행 사진을 본다. 그만큼 많이들 간다. 정말이지 여행처럼 좋은 게 없다.


그렇지만 모두가 여행을 떠날수는 없다.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밥먹듯 떠날 수는 없다. 결국 여행은 일탈이다. 일탈은 일상을 바꾸지 못한다. 일상은 일상으로만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삶은 일상이 모여 만들어진다. 서점에 갈 때마다 여행 코너의 높은 인구밀도를 느낀다. 일탈이 아니면 일상을 개선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까.


여행처럼 좋은 게 없는데, 여행으로는 일상을 바꿀 수 없다면, 여행하듯 사는 수밖에 없다. 어디선가 떠나온 것처럼, 낯선 마음가짐으로 일상을 대하는 수밖에 없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에서 신기한 것들을 발견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삶 자체가 하나의 여행 아니던가.


여행하듯 사는 친구가 있다. 일정이 빡빡하길래 ‘와, 요즘 일 열심히 하시네요’라고 했더니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다 노는 건데’라고 대답하는 친구다. 술냄새 가득한 홍대 어귀 골목길에서 기어이 구석에 핀 꽃을 찾아내 신기해할 줄 아는 친구다. 볼 때마다 일상이, 삶이 여행 그 자체라고 느끼게 하는 친구다. 그리고 여행하듯 사는 삶을 실제로 보면, ‘이게 답이다’ 싶다.


‘삶의 고수’인 이 친구만큼의 경지에는 못 오르더라도, 일상의 이곳저곳에 여행을 끼워넣는 것쯤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흔하디 흔한 우리 아파트 화단에 심어놓은 꽃이 무슨 색인지, 과연 일주일 후에도 화단은 같은 색인지를 살펴보는 것쯤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지나치는 곳의 풍경조차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면서, 굳이 비행기를 타야겠다는 심보 정도는 고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매일같이 하는 생각들과 시시콜콜 내뱉는 말들이 진짜 내 것이 맞긴 한 건지, 제대로 된 게 맞긴 한 건지 생각해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낯설게 하면, 거울만 봐도 여행하는 기분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문학 책을 읽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연수도 그랬다. “진지한 문학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만들어 자아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게 만든다”고.


여행을 일상으로 만드는 것보단,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게 그나마 쉬울 것 같아서 써본 글이다. 물론 전자보다 후자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해서 후자가 절대적으로 쉬워지는 것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좋은 세상은 잘 살기 쉬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사회란 좋은 삶의 난이도가 낮은 사회일 거다. ‘더 쉬운 세상’을 만드는 데 내 일상이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친구의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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