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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Feb 26. 2016

출근 후의 삶을 멋지게 만드는 건 너무 어렵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퇴근 후의 삶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낸다. 무얼 하며 벌어 먹고 사느냐는 그 사람의 삶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일터에서 누구와 부대껴야 하느냐는 그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크리티컬한 요소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일이라는 게 여간 구린 게 아니다. 1) 그럭저럭 생계 유지를 할 수 있으면서, 2)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비전과 함께할 수 있으면서, 3) 계속해서 자기를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그런 꿈 같은 일은 정말 꿈에서나 있다. 가끔 꿈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적을 바라기엔 대부분의 우리네 삶은 너무 현실이다.


그래서 ‘노동 소외’라는 말이 나온다. 나를 위해 일을 시작했는데, 일을 위해 내가 존재하게 돼버렸을 때, 우리는 노동으로부터 소외당한다. 정말이지 쉽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심지어 머지 않은 미래에는 기계한테 대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일을 하면서 살아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써야 하는 삶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멋없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앞으로 ‘괜찮은 일’은 점점 줄어들 거라고 생각한다. 우선 경제성 있는 산업에서 개인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 인류를 가슴 설레게 하는 ‘Next Big Thing’이 없는 상태에서, 조금만 뭐가 괜찮아 보인다 싶으면 전 세계가 달려든다. 그만큼 경쟁이 빡세진다. 코딱지만한 우리나라에서도 좀 괜찮은 아이템이다 싶으면 관련 시장이 미친듯이 달아오른다.


치열한 경쟁에선 개개인의 개성을 투영하기가 어렵다. 느슨한 시장에서는 내 니즈 반에 고객 니즈 반 섞어서 만들어도 적당히 팔 수 있었다. 그렇지만 빡센 시장에선 함부로 개성질하기 힘들다. 오로지 고객의 니즈에 충성을 다 바쳐도 잘 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쟁이 빡세지면 기업들의 덩치도 커진다. 요즘은 스타트업들도 말이 스타트업이지 최대한 빨리 펀딩 받아서 덩치 키워서 똑똑한 애들 쓸어담고 마케팅 터뜨려야지 살아남는다. 삼성전자에서 자아 실현이 어려운 건 삼성전자의 기업문화가 경직됐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냥 삼성전자에 다니는 순간 그 사람은 1/30만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돈 되는 일’ 중에서 ‘개성 있는 내’가 될 수 있는 일자리는 진짜 적다.


어쩔 수 없다. 괜찮지 않은 아이템은 시장이 엄청 작으니까. 이게 다 next big thing이 없어서 그렇다. 다른 말로 하면 딱히 인류가 국가나 종 단위에서 전력투구 할만한 건덕지가 없다는 뜻이다. 억지로 ‘이것도 나름 괜찮아’라며 스타트업이니 혁신이니 화성이니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좋은 건 이게 왜 좋은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크게 세 가지 전략을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꿈 같은 일 찾기, 두번째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세번째는 퇴근 후를 사는 삶. 아 물론 포기와 순응이라는 네 번째도 있겠구나.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트레바리는 꿈 같은 일이다. 일단 정말로 뜻깊은 일이라고 믿으면서 일할 수 있다. 한 달에 한 권씩 다양한 책을 읽는 것도, 한 달에 한 번씩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도, 한 달에 한 번씩 좋은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도, 너무 뜻깊은 일이라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자면 입꼬리를 내릴래야 내릴 수가 없다.


제이커브 그리면서 쭉 성장해서 기업가치 1조 찍고 유니콘 마크 단 그런 힙하디 힙한 회사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 수는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역시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업의 특성상 요즘 핫한 비즈니스들과 비교하면 switching cost도 높은 편이고, 그로 인해 retention rate도 감당할 만한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물론 망할 것입니다만...


훌륭한 동료들과 계속해서 성장을 꿈꿀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일단 지적 활동을 다루는 일이다. 지성은 예술과 함께 인간이 지루하지 않게 계속해서 몰두할 수 있는 유이한 ‘놀이’다. 어느 순간 달라지는 건 숫자뿐인 일들과는 다를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아 망하기 싫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호사가 순도 100% 운의 결과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 운은 곧 끝날 것입니다만, 어쨌든 운 좋게 작지만 매력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맥락에 내가 놓여 있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전략은 사회적으로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일은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괜히 칙센트미하이가 <몰입의 즐거움> 첫 장에서 인생의 불공평함부터 짚고 넘어가는 게 아니다. 그리고 운 좋은 소수가 누릴 수 있는 기쁨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는 절대로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서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이 ‘누군가’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해서 이런 일들을 모두 로봇이 처리할 수 있게 된다면 인류는 전혀 새로운 전기에 접어들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요원해 보인다. 맥잡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전략은 단연 세번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출근 후가 아름다워질 수 없다면, 퇴근을 빨리 하면 된다. 퇴근 후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적어도 출근 후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보단 쉽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전략은 첫 번째 전략보다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적은 전략이기 때문에 넘어가겠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두 번째 전략을 열심히 찬양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세 번째 전략을 택하려면, 돈을 덜 벌 각오 정도는 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미친듯이 일 해봐야 그렇게 잘 먹고 잘 살기도 어렵다. 윗 세대들이야 연평균 성장률 10% 찍는 것도 경험해 봤고, 산업별로 제품별로 막 글로벌 1등 하는 것도 해봤고, 다이나믹 코리아니 뭐니 하면서 한해 한해가 달라지는 대한민국을 경험해 봤으니 이 말이 엄청 패기 없게 들리겠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나.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 소리 들으면서 고속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부모님 세대의 피땀 어린 노력도 있었지만, 중동 특수에 3저 호황에 마땅한 경쟁국 부재 등 미친 운빨이 수십 년 동안 신나게 터져줬기 때문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운이 없다. 어설픈 중진국이라 간지나는 소비재나 콘텐츠 뽑아서 수십조씩 땡기기도 애매하고, 저가로 밀어붙이기엔 비투비도 비투씨도 이젠 설 자리가 마땅찮다.


얼마나 답이 안 나오는지는, 이른바 ‘엘리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실하게 공부해서 갈 수 있는 좋은 직장들을 생각해 보자. 컨설팅, IB, 변호사, 의사, 대충 이 정도가 생각난다. 그런데 이젠 어떤 것도 그렇게 쏠쏠하지 않다. 예전에는 이런 데 나오면 어느 정도 승승장구할 길이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마저도 아니다.


컨설팅 나와도 예전처럼 이곳저곳에서 미친듯이 러브콜 보내는 것도 아니고, 금융 시장은 ‘엘리트’로 통칭되는 성실하게 문제 잘 푸는 인재들이 활약해서 부와 명예를 쌓아나가기엔 자본 아니면 진짜배기 실력으로만 승부할 수 있을만큼 거세졌고, 법률 시장의 마진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고, 1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을 어마어마한 등록금 등과 함께 헌납해서 딴 의사 자격증의 결과는 젊은 세대에게는 대부분 페이닥터 정도가 됐다.


맥킨지나 김앤장 다니는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얘네가 버는 돈을 시급으로 환산하면 사실 그렇게 높지도 않다. 밤은 물론이고 새벽이랑 주말까지 헌납하고 일만 하는데, 가족이고 연애고 친구고 취미고 어지간하면 다 포기하는데, 게다가 나름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들인데, 이정도면 구린 대우라고 본다. 덕분에 내 주변에는 ‘나 안 행복해, 힘들어’라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하는 컨설턴트, 변호사, 의사들이 한가득이다.


이젠 진짜 공무원밖에 안 남았다. 임고 보고 행시 보는 건 정말 개인 단위에선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스승과 관료라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직종에 대의명분 없이 들어간 종사자들이 많아졌을 때 사회의 미래가 살짝 걱정될 뿐이지.


갤럽에서 미국인 6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연소득이 6만달러를 넘으면 그 다음부터는 소득이 증가해도 딱히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놀랍도록 수평적인 곡선이었다고. 단 6만 달러 밑으로는 소득이 감소할수록 불행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커지긴 했다고 한다. 결국 가난하면 불행하나, 부유하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의 확인.


대니얼 카너먼이 테드에서 강연한 영상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공무원 되는 게 얼마나 경제적으로 남는 장사냐 하면, 보통 대기업에 입사하면 20년 정도 일하고, 10억 정도 받는다. 그런데 선생님이 되면 평균 35년 이상 일하고 12억을 받는다. 물론 대기업 나오면서 받는 퇴직금이랑 죽을 때까지 받는 공무원연금의 차액은 계산하지 않은 수치.


아마 한국을 기준으로 두고 또 지역별/연령별로 세분화를 시키면 ‘불행하지 않기 위한 적절한 소득 수준’이라는 걸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서울에 사는 30대 초반은 연봉 3천, 강릉에 사는 30대 중반은 연봉 2천, 뭐 이런 식.


어쨌든, ‘더 많이’에서 ‘여기만 넘자’가 되면, 아주 많은 사람들의 속이 아주 많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남은 건 행복이고 지성이고 예술이다. 어찌보면 삶의 본질에 훨씬 더 가까운 영역이다.


그렇다면 퇴근 후의 삶은 뭘로 채울 수가 있을까. 당연히 ‘놀이’와 ‘친구’다.


굳이 어떤 놀이여야 하는지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미 인간은 어마어마하게 훌륭한 놀이 두 개를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지성과 예술이다. 둘 다 끝이 없고, 질리지 않고, 성장을 체감할 수 있는 놀이다. 나는 지성과 예술이 더 고귀하고 품격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안 질리고, 삶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놀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빠질수록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는 놀이는 오래 곁에 두기 어렵다.


그 다음은 친구. "사람들은 친구와 같이 있을 때의 경험을 가장 긍정적으로 보고한다. 사람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건 친구와 함께 있을 때 더욱 행복을 느끼고 의욕도 올라간다. 공부나 가사노동도 혼자 하거나 식구와 하는 경우에는 마지못해서 하지만 친구들과 같이 하면 신이 나서 한다.” <몰입의 즐거움> 6장에서 칙센트미하이는 바람직한 친구 관계를 찬양하고 또 찬양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친구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관계 중 가장 자발적인 관계기 때문이다. 자신이 기꺼이 선택한 것보다 더 즐길 수 있는 게 어디 있겠나.


네 트레바리는 ‘지적 활동을 오래오래 함께 해나가는 친구’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기승전 트레바리...!!!


쓰고보니 어마어마하게 요원한 그림이긴 하다. 일단 우리 사회가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중 하나가 ‘막연한 두려움’을 치우는 일 아닌가. 물론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 콘텐츠가 조성되어 있어야 할 거고, 함께 놀 수 있는 커뮤니티도 있어야 할 거고. 그런데 좋은 놀이와 좋은 친구는 한번에 쨘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지루함과 불편함을 인내하고 어느 정도 갈무리가 되어야만 빛나는 게 지성이고, 예술이고, 우정 아닌가. 매스 단위에서 이런 인내심을 만들어 나간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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