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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Jan 26. 2020

우리가 외면하는 우리

김시덕의 <갈등도시>를 읽고

주변 사람들한테 #김시덕 의 #갈등도시 를 그의 또다른 책 #서울선언 과 함께 자주 선물하는 편이다. 이 책은 사람들이 은근슬쩍 모른 척 하고 있는, 또는 감추고 싶어하는 서울의 여러 모습들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이 실제의 서울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현대 서울의 역사는, 서울이 발전하는 데 방해가 되고 서울 시민이 보기 좋지 않다고 간주되는 수많은 시설과 사람들을 경기도로 밀어낸 역사입니다.”


돌이켜 보니 주로 사업이나 투자 쪽 일을 하는 지인들에게 이 책을 많이 선물했던 것 같다. 이른바 기득권(?)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보지 않고 살아가는 세계와 잊고 살게 되는 감수성이 있는데, 이 책이 그런 부분들을 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연하지만 저자의 모든 의견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설령 동의하더라도 삶이나 행동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 익숙하지 않은 시선으로 한번쯤 내가 서 있는 지점과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가치있다. 모든 것을 다 껴안고 살 수는 없다. 적당한 외면은 우리의 정서적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잠시 멈춰서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면서 살고 있는지 생각하고 싶다. 이 잠깐의 돌아봄이 우리를 괴물이 되지 않게 지켜줄 거니까. 물론 이 책은 흥미로운 지적 자극으로도 가득하다. 아래는 책을 읽으면서 메모한 내용의 일부.


수원시와 성남시의 경우 상당 부분을 군사 비행장이 차지하고 있지만, 이 군사 비행장은 네이버 지도 앱에서 아예 표시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구글 맵으로는 보인다.

저자는 서울 각 지역의 경계선에 주목한다. 보기 싫은 것들을 미루고 치우다 보면 경계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빈민촌, 성매매 집결지, 한센인 정착촌, 군부대, 쓰레기 처리장, 교도소.

’대서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미 춘천과 청주까지도 서울 세력권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강남은 영등포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당산에 있는 '강남 빌딩’ 등이 그 증거다. 강남에서 '영동'이라는 지명을 발견한다면, 그곳이 강남이 아직 '영등포의 동쪽'이던 시절부터 있었다고 생각해도 좋다.

1970년대 이전에 지어진 건물 중에는 옆으로 철근이 튀어나온 경우가 많다. 돈을 벌면 옆으로 건물을 확장하기 위해 일부러 철근을 길게 뽑아둔 것이라고 한다. 고도성장기의 흥미로운 풍경. 방글라데시의 다카 등 요즈음의 동남아에서도 이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재개발할 때마다 물리적 충돌을 동반한 과격한 갈등이 뒤따르는 이유는 시, 도, 구, 군 등의 행정 당국이 이러한 갈등의 해결을 민간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을지로3가역 근처는 이순신 생가 터가 있는데, 이곳이 이순신이 태어난 곳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저자는 시종일관 조선 시대를 계승하고 싶어하는 한국 사회 일부의 모습에 적대적이다. 조선은 약소국이었고, 지배층의 안위만을 우선시했으며, 무능했다. 눈부신 경제적 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대한민국이 뭐하러 조선에 대한 향수를 가질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현재 서울에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무려 네 군데나 있다. 20세기 초반의 조선인들한테는 이순신보다 관우가 오히려 더 친숙한 존재였다. 그러나 아직 어느 사당도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서울에도 채석장이 있었다. 창신동, 남현동, 길음동, 면목동 등. 특히 남현동 채석장은 6-70년대 서울 시내 공사 현장에서 사용되는 석재를 거의 전담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한양 도성은 행정 구역을 표시하는 데에는 유용했지만 방어라는 관점에서 보면 거의 아무 쓸데도 없었다. 너무 넓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도 산성 놔두고 평지의 읍성을 지키려다가 패한 예가 많았다.

강남 개발은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 강북 인구를 강남으로 옮기는 데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강남 개발 초기의 건물 곳곳에는 안보 시설이 많다. 예를 들어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 설치된 벙커라던지.

테헤란로는 1977년에 서울시와 테헤란시의 우호관계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년만 늦었어도 미국과 이란의 사이가 나빠져서 강남 한복판에 테헤란이라는 이름이 들어설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식민지 시절 용인은 대일본제국의 수도로서 검토된 적이 있다. 부평은 6.25 전쟁 직후 새로운 수도의 후보로 거론됐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시덕님의 #트레바리 클럽이 오픈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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