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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직활동가 Sep 16. 2015

갈증을 찾아서

음악, 그 뜨거운 이름

그러니까 목이 말랐던 것이다. 음악이 마냥 좋았던 10대 시절. 리드미컬한 흑인음악에 나는 제대로 꽂혔다.  그때가 아마 18살이었지. 10년 전 이야기다.


보이즈 투맨으로 시작했다. 당시 YG엔터테인먼트에는 소울스타라는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보이즈 투맨 팬카페에서 꽤나 유명했다. 멤버 중 한 명이 그 카페에서 활동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팬카페다 보니 유저들이 커버곡을 올렸을 텐데, 그룹을 만드는 과정에서 해당 멤버가 스카우트된 것으로 안다.  그때는 나도 막연한 꿈이 있었다. 


'아 이렇게 가수가 되는 방법도 있구나'.


고등학교에 입학해  학교 내 중창단에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나면 건물 위층에 있던 음악실로 뛰어갔다. 민중가요를 불렀고, 러시아 가곡도 불렀다. 집에서는 입시를 앞둔 중요한 시기에 노래를 한다고 눈총을 줬다. 중창단은 지역 내 타 고등학교의 중창단도 포함돼 있던 연합동아리였다. 토요일마다 근처 여고에서 연습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연말 공연을 끝으로 시들하게 중창단 생활은 끝났다. 


그러다가 학교 축제를 나가기 위해 친구들과 팀을 만들었다. SG 워너비의 "The Story"를 불렀는데, 친구 두 명은 떨어지고 나만 붙은 것. 1학년 중에서 나만 축제에 올라가게 됐다. 2학년 형들과 한 팀이 돼 무대에 올라갔다. 당시에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보다 뿌듯함이 더 컸다. 그 축제 무대가 계기였을까. 나는 학교에서 'SG 워너비'로 불렸다. 이후 여자 사람에게 연락도 왔다.  나로서는 처음 느껴본 경험이었다.  노래는 사람을 새롭고 매력적이게  만든다는 것을  그때 알아버렸다.

 

돌아보면 이후의 삶은 많이 달랐다. 노래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서 학교에 노래를 잘하는 친구를 소수문해 끌어모았다.  그때 학교 내 힙합동아리에 가입해 한 친구를 만난다.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하 베프)가 된다. 동아리는 MR 반주에다가 멤버들 모두가 가사를 썼다. 그게 철칙이라고 믿었다. 나는 옆에서 자연스레 멜로디를 만들며 노래했다. 


지역 내 청소년수련관에서 산하 동아리 연합축제를 열었는데, 거기서 베프와 팀을 결성해 처음으로 노래를 선보인다. "소년에서 어른으로"라는 곡이었다. 보이즈 투 맨 을 좋아했던 터라 많은 감정이입을 했다.  그때 우리가 만든 팀 이름이 '참된소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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