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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직활동가 Jun 22. 2018

타락한 양심들

현실기반한 픽션

은행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금융업은 돈을 대신 맡아 운용하는 산업이라 신뢰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그간 쌓아둔 믿음들이 최근 증발해버렸다는 것이다. 채용 비리 때문이다.

대개 모든 회사에는 인사부서가 있다. 영어로 Human Resources, 줄여서 ‘HR’이라고 한다. K은행의 채용비리는 HR부서에서 시작됐다. 먼저 지난 2월 구속된 오 팀장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2015년의 일이다. 오 팀장은 HR과 관련된 컨퍼런스에 회사를 대표해 채용팀장으로 K은행의 사례를 전국을 누비며 알렸다. 특히 은행장과 금융지주를 겸임하는 Y회장에 대한 칭찬은 빼놓지 않았다. 늘 ‘직원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을 실천하는 Y회장의 리더십이 K은행을 국내 리딩뱅크로 만든 비결이라고.

이 뿐만 아니다. “국내 1등 은행을 넘어 아시아 뱅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회사 내 지원부서인 HR의 역할이 매우 크다”며 인사 업무를 하고 싶은 ‘인사 꿈나무’들에게 정신적 멘토를 자처했다. 특히 탄핵된 박근혜 정부가 설립한 ‘청년희망재단’에서 진행하는 <일자리 특강>에서 은행에 입사하고자 하는 대학생을 만나 희망을 주었다. 취업 관련 매체의 기사에 빠짐없이 나온 사례가 K은행이었고, 이를 알리는 홍보맨이 바로 오 팀장이었다.

대외적으로 뛰어난 오 팀장이 구속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학생들에게 채용의 공정함을 강조하면서 뒤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지난주 주말 뉴스를 통해 세상에 까발려졌다.

2015년도 상반기 채용에서 오 팀장은 반가운 이름을 발견한다. 92년생 정지원(가명), K은행 부행장의 자녀였다(은행에서 부행장은 임원급 중에서도 최상급 임원이다). 생년월일도 5월 30일, 틀림 없었다. 미리 엑셀 시트를 만들어 두어 정리를 해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팀장은 부행장 자녀의 서류전형을 가뿐히 통과시켰다. 서류 무더기 속에서 '정지원'이라는 이름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경쾌한 마음으로 그날 밤 K은행 부행장에게 문자 메세지를 남겼다.

“부행장님, 따님 이번 서류전형에 통과했습니다. 면접은 이 부행장님이 보실 겁니다. 염려 마십시오”

띠리링! 답 문자가 바로 왔다.

“오 팀장, 내 아들은 군대에 가 있네.”

92년생 정지원. 부행장 아들과 동명이인인 그녀는 면접에서 탈락됐다. 오 팀장은 이번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웠다. 마침 은행 비서실에서는 Y은행장 누나의 손녀 M이 광주에서 지원할 거라고 알려왔다.

오 팀장이 Y은행장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기회였다. ‘상고 출신의 천재’라고 불리는 Y은행장은 과거 광주상고(현재 동성고)에 다닐 때 광주 누나 집에서 통학했다. 대학 졸업 후 이십대 후반이 넘어서도 취업하지 못한 M은 집안의 걱정이었다.

누나가 Y은행장에게 부탁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실만 두고 이 문제를 접근해보자. 서류전형에서 거의 꼴등(840명 중 813등)인 M이 면접 점수(1차: 300명 중 273 등, 2차 : 120명 중 4등)에서 최고 등급을 받아 K은행 2015년 상반기 채용에 합격했다.

지금 그녀는 광주에서 가장 큰 지점의 어엿한 은행원이 됐다. 최근엔 출산까지 했다. 당시 채용의 문제점 중 하나는 오 팀장과 HR부행장인 이 부행장이 직접 광주로 내려가 M의 면접을 봤다는 것이다.

K은행은 "2015년 상반기 전형까지는 각 단계마다 제로베이스 형태로 채점됐다"고 해명했지만, 1차 면접도 아니고 2차 면접에서 최고등급을 받아 최종 채용됐다는 것은 사실상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M이 그해 하반기에 K은행을 지원했다면 합격하지 못했을 것이 확실하다. 서류전형 꼴지를 HR부서에서 면접을 봤다고 최종합격시켜주는 채용은 K은행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2015년 하반기 채용부터 각 전형마다 10% 넘게 전 단계의 점수를 반영한다)

오 팀장의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여전히 "자기 잘못은 없다" "위에서 시킨대로 했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K은행은 채용에 관한 '전결' 권한이 있는 이 부행장 아래의 HR라인이 구속(구속 3명, 불구속 1명)됐다. 또 채용 전결 권한이 있는, 이 부행장은 "Y은행장의 지시는 결코 없었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

채용에 대한 최종 책임이 이 부행장에게 있다면 그를 처벌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Y은행장은 정말 누나의 손녀 M이 K은행에 지원한 사실을 "전혀" 몰랐을까.

가장 아래 있는 채용 팀장은 위에서 시켰다며 책임을 위로 넘기고, 은행의 모든 것을 보고받고 결정하는 CEO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HR부행장이 채용의 총 책임자라고 면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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