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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직활동가 May 22. 2019

<일주일 제주도민이 되었네>

4.3 평화공원과 바다자전거(2편)

예상치 못했다. 내가 평화공원에서 하루를 다 보낼 줄이야.

그만큼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제주에 도착했을 때부터 나는 4.3 평화공원을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혀 그 사건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비행시간 동안 '지슬' 영화를 보려고 했으나 결국 앞부분만 보다가 제주도에 도착해버렸다,


전시관에서 많은 것들을 학습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됐다. 


보고서에서 말하는 4.3의 정의는 이렇다.



"제주 4.3 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이해했다. 


4.3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집권한 후 제주도에 빨갱이가 있다고 하여 

'서북청년단(서청)'을 보내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라고.


이승만은 서청을 우리나라 최초 전투경찰로 만들어 제주 주민을 학살했다.

국가권력에 기생한 서청은 이승만 정권의 친위대를 자처했다. 


이러한 서청이 수십 년이 지나 박근혜 정부 때 광화문에 다시 등장했다.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마음인 노란 리본을 철거하겠다고 말이다. 


서청은 무엇을 하고 싶었나. 


국가 전복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을 다시 한 번 제주에서처럼 학살하겠다는 뜻인가.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반복을 막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지난 시간을 바로잡을 수 없지만 우리는 반성할 수 있다.

반성하면 행동이 이전과 달라진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4.3 사건에 대해 이렇게 사과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태동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가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5.18 기념식에서 광주에 사과했다. 



"특히 광주시민 여러분과 전남도민들께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80년 5월 광주가 피 흘리고 죽어갈 때 광주와 함께하지 못했던 것이 그 시대를 살았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정말 미안합니다. 그때 공권력이 광주에서 자행한 야만적인 폭력과 학살에 대하여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대표하여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반성 없이 사과는 나올 수 없다. 

이승만을 국부로 일컫는 세력들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사과를 했는가.


이 곳에서 나는 하루를 보냈다


나는 제주도 첫날, 4.3 평화공원에서 학살당한 제주 주민들을 만났다.


이름 새긴 비석에 둘러싸여 한없이 한숨 쉬며 마음을  달랬고

뼈 밖에 남지 않은 학살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관에서 등골이 서늘했다.


공원에는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수학여행 차 온 것 같았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제주도에 수학여행으로 왔지만

4.3을 접하지도 못했다. 


단원고 아이들이 생각났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도 역사에 포함되어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국가가 구조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 언제쯤 할 수 있을까.


4.3을 알고 싶어 제주에 왔지만

제주에 오지도 못한 세월호 참사 아이들이 더 생각났다. 


그들 대신 홀로 제주도에 여행 온 것 같아 미안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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