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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둥대는금붕어 Aug 27. 2021

다시 꿈꾸는 이유

러빙 빈센트, 2017,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作

2019. 11. 28


 가을 끝나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춥네요. 전 얼죽아파인데 오늘만큼은 따뜻하게 마셨습니다. 근데 아메리카노는 따뜻하게 마시면 끝맛이 너무 써서 혀가 아파요. 혹시 따뜻하게 마시는 걸 좋아하세요?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지난 번 해주신 질문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결핍이라는 게 꼭 사람을 망가지게 할까요? 전 사람마다 좀 다를 거 같아요. 그러니까 사람 성격에 따라서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발현될 때는 재능이 있을 때거나 자기 자신을 엄청 제련할 때겠죠. 도 닦는 과정이지 않을까요? 최근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 질문을 계속 생각해봤어요.


 '러빙 빈센트'라는 영화예요. 작년에 그 영화 보고 감상문 쓰는 수업이 있었거든요. 그때 교수님이 영화를 보여주셔서 다같이 봤었어요. 그런데 초반에 고흐가 자기 귀를 잘라서 좋아하던 여자한테 선물하더라고요. 당연히 선물받은 여자는 질색을 했는데, 그건 저희 동기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완전 미친 사람 같다고, 징그럽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누가 자기 귀 잘라서 주면 미쳤다고 할 거예요. 그걸 선물이라고 주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겠죠.


 그런데 제 일이 아니면 원래 여유가 생기잖아요. 수업 중에 영화가 끊겨서 집에 오자마자 나머지를 다 봤거든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그게 궁금했는데 다 보고 나니까 알 것도 같았어요. 





 고흐는 첫째지만 첫아이가 아니었대요. 어머니가 사산한 형의 이름을 고흐에게 붙여주었다는 거죠. 그리고 가족들하고 잘 지내지도 못했고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려고 했지만 그게 잘 안 됐대요. 그러니까 자아가 많이 흔들렸겠죠. 사랑에 대한 결핍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귀를 잘라서 여자에게 준 이유도 일맥상통하다고 봤어요.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 하잖아요. 사랑도 비슷할 거 같아요. 받아본 사람이 주기도 하는 거죠. 그런데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 사회적인 방법을 고흐가 몰랐던 거 같아요. 순수해서요. 여기서 순수하다는 건 사회적으로 정한 규칙 같은 걸 잘 모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거예요. 순수하다는 게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건 아니잖아요.


 아무튼 귀를 잘라서 준 행위를 사랑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귀가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이에요. '내 일부를 주는 게 사랑'이라는 관념은 다들 어렴풋이 알잖아요. 그래서 사랑을 표현한 건데 그 방법이 좀... 그랬던 거죠. 그래서 저는 고흐가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음속에 사랑이 있는데 그걸 표현할 줄 모르면 좀 슬플 거 같거든요. 외로웠을 거 같아요.





 그런데 고흐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요. 마르그리트라는 여자예요. 고흐의 재능을 동경하고 질투했던 주치의 가셰 박사의 딸이기도 하구요. 이 여자는 다른 사람들한테 자긴 고흐랑 별로 안 친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이 사람 말하는 거 보면 고흐가 외롭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걸 다 알고 있거든요. 그런 걸 알아차리려면 상대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잖아요. 오랜 시간 관찰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매번 고흐의 무덤 앞에 꽃을 두고 가요. 천재였던 고흐가 평생 예술가가 꿈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좌절시킨 것과는 별개로, 그 재능에 기대지 않고 계속 배설하고 노력하고 느끼려고 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그런 마음에 대한 경외심에 꽃을 두고 가는 거예요. 실제로 고흐는 그녀가 피아노치는 모습을 그렸었어요. 마르그리트는 평생 아버지 집에서 미혼으로 살면서 44년간 그 그림을 자기 침실에 걸어뒀대요. 그 마음이 짐작가세요? 전 평생 모를 거 같던데.


 저는 이 여자가 제일 좋았어요. 그런 고흐의 특성을 알아주는 이 사람도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이죠. 저는 아내, 남편, 형제, 친구 이렇게 꼭 규정지을 수 없는 관계여도 평생 연결되어진 채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주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겠지만요. 이 사람이 고흐랑 꼭 그런 관계인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편지 받고 이 영화를 다시 봤는데요. 앞서 말한 것처럼 결핍의 발현은 정말 제각각일 거 같아요. 저는 고흐가 살고 싶어서 그림 그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왜냐하면, 고흐는 계속 말해요. 자기는 꿈을 꾼다고. 다른 예술가들이 종착지로 머무는 파리를 가뿐하게 지나치잖아요. 마구마구 꿈을 꾸니까. 저는 꿈을 꾼다는 건 가슴 터질 거 같고 설레면서도 되게 막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항상 오지 않은 미래를 그리는 거니까요. 미래가 지금보다 나을 거라는 기대로 견디기 힘든 현실을 지탱해주기도 하잖아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누구에게나 그런 믿음이 필요한 거 같아요. 고흐한테는 그게 그림 아니었을까요. 결핍이 신념을 만들어준 거죠. 그래서 좌절하다가도 다시 꿈꾸고. 살아야 하니까요. 음. 말이 안 되나요?


 결핍이 사람을 괴롭게 하는 건 맞는 거 같아요.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게 하잖아요. 내 것이 아니라고 인정해버리면 편한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잘 안 되죠. 남의 떡이 커보인다, 남의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라는 말이 왜 나왔겠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결핍은 남다른 마음을 동반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별을 보면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거라고 했을 때 고흐는 별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별에 대해 계속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문이 고흐를 세계적인 화가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작품에 표현해내려고 한 게요. 전 그게 되게 순수하게 느껴지네요. 그래서 좀 무섭기도 해요.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다고 느끼시는 거죠. 그래도 그냥 계속 꿈꾸고 하던 거 하셨으면 좋겠어요. 거기서 행동이 멈춰버리면 정말 초라해질 거예요. 욕심을 잘 이용해 보세요. 말처럼 쉽지 않은 거 알지만, 말이 쉽지 않으면 정말 다 어려워질 거 같아서요.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지점을 건드리는 것만 해도 재능이지 않을까요? 그런 거라면 잘하시니까, 잘되실 거예요.


 해 떴네요. 저는 이제 자야겠어요. 오늘 공강이거든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슬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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