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삼남매가 되다:우리의 성장기> (1)
<나는 너를 품었고, 너는 나를 살렸다>
잊을 수 없는 날들을 기록합니다.
사랑이 남긴 상처와 다시 살아가게 한 온기에 대하여.
※ 이 브런치북에는 반려동물의 죽음, 이별, 강한 감정 묘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등학생 쌍둥이 자매와 강아지 토토.
토토 얘기를 하자면 우리 세 남매의 이야기는 절대 빼놓을 수 없다. 하루를 말해도 부족할 정도로 17년을 함께 울고 웃었으니, 이 정도면 같이 커왔다고 해도 될 거다.
우리가 어릴 때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 하교하고 오면 집에는 쌍둥이와 토토, 우리 셋뿐이었다. 집에서 혼자 있던 토토는 우리가 오면 그제야 꼬리를 치며 반겨줬고, 집안은 그렇게 우리 셋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사실 집뿐만 아니라 밖도 우리 세상이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한창 친구들이랑 놀기 좋아하던 우리 자매는 나가서 놀 때면 항상 토토를 데리고 갔다.
친구들이 전부 토토를 귀여워해 줬지만, 간혹 짓궂은 아이들은 작은 토토를 놀리거나 지나가던 길고양이를 가리키며 싸워보라고 부추겼다.
토토에게 싸움을 부추겼던 그 못된 친구. 그 친구와 우리가 싸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 동생을 내가 괴롭히는 건 괜찮아도 남이 괴롭히는 건 절대 두고 볼 수 없으니까.
마냥 작고 귀여운 토토는 우리가 지켜줘야 할 동생이었다.
그때 만난 위협하며 냥냥 펀치를 날리던 고양이 때문에 토토는 다 커서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강아지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누나들이랑만 노느라 사회화가 덜 된 토토는 동물보단 사람을 더 좋아했다.
우리 세상이었던 <우리 집>
집에서 우리끼리 노는 건 간단하면서도 재밌었다.
작은 토토가 너무 귀여워서 헨젤과 그레텔처럼 간식으로 길을 만들어주기도 했고, 동요에 토토 이름을 넣어 불러주기도 했다. 멋쟁이 토마토, 소나무, 섬집아기, 예쁜 아기곰 등이 있었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건 토토의 별명을 따온 멋쟁이 토마토였다.
또, 나무젓가락에 기다란 줄로 인형을 묶어 낚시 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낚시하듯 나무젓가락을 흔들면 토토가 타다닥 소리를 내며 달려와 인형을 물었다. 인형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리 당기고 저리 당겼다.
아무것도 모를 때 그러고 놀았는데, 커서 알게 된 건 그게 터그 놀이라는 거였다.
이 낚시 놀이가 당시의 우리에겐 즐거웠지만, 누나의 관점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이때 어린 토토의 성격이 나빠진 것 같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던 인형을 잡으려고 애썼고, 잡으면 조금 있다가 또 도망치듯 날아오르는 인형 때문에 그럴 만도 했다.
토토는 커가면서 감정에 솔직해졌고, 그래서 물리기도 많이 물렸다. 이 모든 건 그때 그 인형 놀이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조금 다른 방법으로 놀아줬다면, 그냥 인형 던지기를 하고 놀았다면 토토는 성격이 조금은 착했을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누나의 관점으로서 말하는 거다.
그래도 물 때 세게 물지는 않았다.
우리가 “아!”하는 소리를 내면 토토는 금방 입을 뗐고, 그것 또한 하나의 놀이가 됐다.
2000년대 초반. 지금처럼 반려동물에 관해 알려진 게 잘 없던 시절이었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잘 지낸 것 같다.
훈련이라는 목적으로 “앉아, 엎드려, 기다려”를 알려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습게도 토토는 “앉아!”만 하면 “엎드려”와 “기다려”가 자동으로 이어졌다. 앉으라고만 했는데도 토토는 이미 엎드려서 기다리는 중이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아무리 가르쳐도 절대 손은 주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너무 작고 귀여워서 오냐오냐하며 예뻐했던 탓일까. 정말 그것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큰 뒤에도 안는 건 정말 싫어했으니, 손도 주기 싫었나 보다.
그래도 예쁜 걸 어떡해? 작고 귀여운 네 잘못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