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만남 그리고 이별

1-3 <이별하기:너를 보내는 일> (2)

by 별의기록

<나는 너를 품었고, 너는 나를 살렸다>

잊을 수 없는 날들을 기록합니다.

사랑이 남긴 상처와 다시 살아가게 한 온기에 대하여.


※ 이 브런치북에는 반려동물의 죽음, 이별, 강한 감정 묘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월 31일. 그토록 오지 않기를 바라던 날이 찾아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준비 중이었다고 했음에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나와 내 쌍둥이는 새벽에 잠들어서 오후까지 자고 있었다. 3교대는 여전했기에 그때는 엄마가 토토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애가 좀 이상해!”



토토가 이상하다며 깨우지 않았다면, 우린 여전히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일어나서 본 토토는 자다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계속 쓰러졌다. 몸을 가눌 수 있게 잡아주자 밥을 먹었고, 그 밥은 토토가 마지막으로 먹은 밥이 되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시간, 오후 2시 24분.


토토는 기운이 없는 듯이 계속 주저앉았고 배변판 위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다니던 24시 병원에 급히 전화를 걸어 토토를 봐주던 주치의 선생님이 계신 걸 확인하고 3시에 병원에 도착했다.


선생님께 안겨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그날이 토토와 이별하는 날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검진하고 나온 선생님의 말씀은, 종양에 있던 혈관이 터지면서 몸 안에 있는 혈액과 혈관에 있는 혈액이 똑같은 양으로 위험한 상황이라는 거였다.


지금도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심각한 상황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수혈과 수술, 수액 처방을 해줄 수 있지만 그게 생명을 연장해 줄 수는 없다는 말과 함께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는 안타까움이 섞인 말.


그 말에 우리 자매는 거기가 병원임을 알면서도 눈물이 터졌다.


17년을 같이 산 하나뿐인 동생을 오늘이 지나면 못 본다는데 안 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마지막 가는 길이 아프고 힘들 수 있다는 말…….


안락사라는 방법도 있다는 말을 들으니 그제야 더 실감이 났다.


우린 안락사 대신 집에 가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당시에는 토토가 싫어했던 병원보단 17년 살았던 집이 낫겠다고 생각해서였다.


선생님 입장에선 최선의 말이었겠지만, 그 당시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


토토가 두 달이라는 시간을 줬음에도 말이다. 힘없는 토토를 안고 나와서 사람이 많은 병원 안에서 우리 자매는 펑펑 울었다. 보다 못한 아빠가 빨리 가자며 재촉했을 정도였다.



오후 4시.


집에 도착한 우리는 토토가 좋아하는 파란색의 두툼한 이불을 깔아주고 토토를 눕혔다. 병원에 같이 가지 않았던 엄마도 사실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우리 세 모녀가 울고 있으니, 아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컴퓨터 게임을 하셨다. 당시에는 그게 너무 서운했다. 아무리 강아지라고 해도 하나뿐인 아들인데, 17년을 아빠와 제일 많이 붙어서 잔 토토인데, 컴퓨터, 그것도 게임을 하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아빠 나름의 슬픔을 달래는 방법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마에게 나중에야 듣게 됐는데, 아빠도 눈물이 날 만큼 슬펐지만 세 모녀가 엉엉 울고 있으니, 본인까지 그럴 수는 없어서 참으셨다고.


많이 아픈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비명 같은 소리도 내고,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과 엄마와 누나들이 계속 우는 게 이상한지 계속 뒤척이며 일어나려고 애쓰던 토토.


우리는 마지막까지 힘을 내려는 토토에게 괜찮으니 편하게 가라고 다독였다. 할 수 있는 말은 버티지 말고 이제 편해지라는 것뿐이었다.


그 말을 하면서도 나와 자매는 우리의 결정이 토토를 너무 고통스럽게 한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야 하나, 안락사를 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토토가 어떻게든 버티려고 애쓰는 만큼 우리도 고민을 접은 채 토토를 안고 우리 자매가 함께 쓰는 방으로 갔다.


셋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었고, 토토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은 곳이었다. 그런데 토토는 그마저도 힘든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정말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결국 다시 눕힌 우리는 토토만 보면서 지금껏 하지 못했던,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하지만 누워있던 토토는 아마 우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을 거다.


이불 위에 눕히니 토토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우리를 찾으려는 듯 눈을 깜빡이며 코를 씰룩거렸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토토가 가는 마지막 길을 혼자 쓸쓸하게 보내기 싫은 우리 세 모녀는 토토 옆에서 한시도 떠나질 않았다.



헤어짐의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토토는 점점 숨이 거칠어지고 입이 벌어지더니 혀가 말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혀를 잡아준 큰 누나.


우리는 마지막 이야기가 전해지길 바라며 토토에게 가도 된다고, 이제 편히 쉬어도 된다고, 우리 아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내가 지금까지 후회하는 건 그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거다. 정말 남매처럼 자라와서인지, 아니면 평소에도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말을 못 하는 성격 때문인지.


마지막 인사라는 걸 알면서도 사랑한단 말을 못 한 못난 작은 누나.


그래도 내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토토에게 그만 편히 쉬라고 했다. 아마도 이때 사랑한다고 해주지 못한 건 평생을 후회하며 살아갈 것 같다.



오후 9시 18분.

가족을 위해 힘겹게 버티고 버티던 토토는 가족 품에서 무지개다리로 떠났다. 토토의 마지막 숨이 꺼져갈 때, 아직 안 된다고 오열하던 엄마. 난 그렇게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우는 엄마를 처음 봤다.


아빠는 마지막을 지켜보시고 바로 자리를 뜨셨다. 간 곳은 화장실. 아마 그 안에서 많은 생각에 휩싸인 채 담배를 태우셨을 거다.


난 우느라 아무것도 못 했고, 큰누나였던 쌍둥이는 울음을 참아가면서 펫 장례식장에 연락을 돌리고 예약부터 잡느라 바빴다.


가족의 죽음이란 같이, 함께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피할 만큼 난 내 힘든 것만 생각했던 것 같다. 쌍둥이도 나만큼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텐데, 이기적인 나와 책임감 있는 쌍둥이. 혼자서 모든 걸 떠안아야 했던 쌍둥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가장 크게 남았다.


결국 그날의 나는, 토토에게는 못난 누나이자 쌍둥이에게는 못난 동생이었다.



2002.10.03.~2019.08.31

태어난 지 6177일

처음 쓰러진 지 69일



검은색 물감을 뒤엎은 듯이 아주 작은 까만 꼬물이로 우리 집에 왔던 토토는 듬성듬성해진 금빛털과 함께 떠났다.


친구들이 많을 무지개다리로.


이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건, 그날의 일을 빠짐없이 적어뒀기 때문이다.


기억은 언젠가 퇴색되기 마련이고 잊은 기억이 돌아오는 일은 쉽지 않다.


멋모르고 데리고 왔던 막냇동생 토토. 시간이 흐른 만큼 우리 집에 온 첫날의 기억이 또렷하지 않으니, 마지막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기억할 수 있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까지 확인하고 적어놓을 정도로 난 메모했다.


어쩌면 슬픔을 조금 덜어보자 한 행동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오래도록 토토를 기억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난 그날 이후, 여전히 사소한 것도 잊지 않으려 메모에 집착하고 있다.



토토야, 안녕.

내 동생 토토, 안녕.

우리 나중에 또 만나.

토토한테 쓴 메모(일기) 中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시기, 그날은 매우 더웠다. 그래서 혹시라도 토토의 몸이 어디라도 상하지는 않을까, 에어컨 온도를 최대한 낮춰놓은 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검색해 보니 뭐든 남겨놓는 게 좋다고 했다. 토토가 여름 내내 타고 놀던 튜브를 꽃으로 장식해 사진도 여러 장 찍어뒀고, 발바닥이며 코, 발톱 등등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토토의 모든 것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려 애썼다.


모든 걸 남긴 후, 나는 울음을 삼키며 살가운 말 하나 해주지 못한 누나라 떠날 때까지도 하지 못했던 말을 메모에 적고 있었다.



 그렇게 9월 1일의 아침 해가 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토토를 안고 가던 길, 바람은 시원하고 새파란 하늘 위로 구름이 예쁜 게 꼭 도화지에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 참 맑은 날씨였다.


고요한 정적만이 오가는 차 안과는 어울리지 않는 날씨였다. 차라리 비라도 왕창 내렸다면 좋았을 텐데, 어쩌면 토토가 떠나는 길이니 예쁜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서 상담하며 마지막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날도 나는 버릇처럼 메모를 하고 있었다.


 8시 26분. 토토는 작은 상자에 담겨 뜨거운 불 속으로 사라졌다. 유리창 하나만 사이에 둔 채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내 울면서도 잊지 않으려 영상을 찍었다. 지금도 그 영상은 볼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되었다.


 9시. 토토의 화장이 끝났다. 우리 가족은 유골을 메모리얼 스톤으로 만들기를 바랐다. 메모리얼 스톤을 만들기 위해 직원이 토토의 유골을 가지고 갔을 때, 우리 가족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온 다른 사람들의 울음과 우리처럼 스톤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울음소리. 우리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마음에 어쩌면 작게나마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토토가 혼자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다른 친구들도 함께라는 그런 위로를.


 9시 48분. 토토는 메모리얼 스톤이 되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많이 아팠던 터라 깨진 것도 있고 색이 대부분 탁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올리브색이 많아서 ‘토토는 떠날 때도 누나가 좋아하는 색으로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시. 우리는 이쯤 집으로 돌아왔다. 갈 때는 품 안에 가득 안기던 토토였는데, 돌아올 때는 작은 상자에 알알이 예쁜 메모리얼 스톤이 되어 돌아오니 마음이 너무 이상했다.


아직도 토토가 있었던 흔적은 가득한데, 집으로 들어서니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집은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 다음 이야기는 1-4 <정리하기:남은 자의 시간>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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