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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겸 Aug 29. 2019

살다 보면 꿈은 바뀐다. 그래도 괜찮다.

 2000년 6월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 대학 졸업식 연단에 축사자로 서게 되었다. 그는 말쑥한 모습을 하고 말초신경계를 자극하는 유머로 축사를 시작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견뎌야 했던 실패와 불안을 자신만의 농담과 재치로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볍지 않게 축사를 이어갔다. 그는 축사의 마무리에 이르러서야 졸업식에 참석한 약 6천 명의 청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로부터 약 10여 년이 흐른 2011년. 그는 다트머스 졸업식의 축사자로 다시 서게 되었다. 그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말초적 언사와 유머적 기질은 그대로였다. 변한 것이 있다면 10년 이란 세월이 그의 얼굴에 훈장처럼 녹아 새겨졌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얼굴에 새겨진 명예스러운 훈장과 달리 그의 축사 메시지는 현실적이었다. 그는 자신도 약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멋쩍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되지만,
최선을 다해서 실패를 피해 가라"

10년 전에 한 자신의 메시지를 약간은 비틀어 실용적인 축사를 한 이 사람은 미국 당대 최고의 NBC Tonight Show의 호스트 중에 한 사람이었던 ‘코난 오브라이언(Conan O'Brien)이었다. 지금은 케이블 TV 방송국인 TBS에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론칭한 Conan Show의 호스트이고, 미국 국내외적으로 순회공연과 해외 방문을 하면서 자신의 쇼의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과거의 실패에 몇 겁이 되는 커다란 실패를 피하지 못했었다. 그는 자신의 성장과 정체성을 보장해주던 곳의 중심에서 벗어나 가장자리로 밀려났었고, 무려 20년에 가깝게 자기 젊음을 바쳐 일하던 NBC에서 2009년에 떠나게 되었다. 불합리한 계약의 바이아웃에 사인을 한 채로.

 

 그는 엘리트였다. 그는 하버드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고 교내 유명한 유머 잡지인 하버드 램푼(Harvard Lampoon)의 편집장이었다. 그는 졸업 후 LA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구직과 실직을 번갈아 하면서 실패와 인내를 경험했다. 그는 그곳에서 작은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했으나 3주 만에 해고되었고 윌슨 하우스(옷가게) 판매원, 광고회사 연기자, 극장에서 음료 서빙, 7살 어린이 생일파티 도우미(광대?)를 했었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계속 작가로서 습작을 계속 쓰다가, FOX사의 『월튼 노스 리포트』의 작가 겸 연출가로 일하게 되었으나 방송은 4주 만에 망하고 말았다. 그 후 계속된 노력과 한 번의 행운에 힘입어 그는 NBC의 Satuday Night Live(SNL) 작가로 채용되었고 간간히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한계에 직면한 그는 SNL을 떠나고 방황하다가 다시 FOX의 심슨 가족 작가로 다시 발탁되었다. 그러던 중에 NBC의 『Tonight Show』 후계자 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90년대 미국 토크쇼의 왕좌는 밤 11시 반에 방영하는 NBC의 'Tonight Show'였고 호스트는 '자니 카슨'이었다. 그다음이 'Tonight Show'가 끝난 후 새벽 12시를 넘겨  연이어 방송되는 『Late Night Show』였고 호스트는 '데이비드 레터맨'이었다. 당시 자니 카슨의 후계자는 데이비드 레터맨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자니 카슨도 이를 공인했었다. 그러나 자니 카슨이 은퇴를 하고 나자 공석을 차지한 사람은 자니 카슨의 보조 진행자였던 '제이 레노'였다. 이에 대해서 NBC로부터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했던 레터맨은 극도의 실망감과 배신감을 앉은 채 자신의 팀을 데리고 NBC를 떠나 CBS로 가서 Tonight Show 동시간 대에 자신의 쇼를 론칭해버렸다. 갑자기 공석이 생겨버린 NBC의 Late Night Show의 호스트 자리를 (코난을 눈여겨보고 있던) SNL 총 프로듀서였던 론 마이클스(Lorne Michaels)가 코난에게 그 공석을 제안했다. 코난은 이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꿈은 언젠가 Tonight Show의 호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그 자리는 그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코미디어들이 원하는 '왕좌'이자 '성배'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차지하는 가장 빠른 길은 Late Night Show의 호스트가 먼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1993년에 코난은 Late Night Show의 호스트 계약을 NBC와 체결하게 된다.

<Late Night Show 첫방송에 대한 스트레스를 유머로 표현한 코난. 출처: 유튜브 Team COCO>

코난은 Tonight Show의 호스트가 되기 위해 약 16년 동안 Late Night Show의 호스트를 하게 된다. 그도 처음 한 3년 간은 고전했다. 하지만 다른 호스트들과 다른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여러 코너를 진행하면서 성공적인 호스트로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그는 '제이 레노'와 '지미 키멜'처럼 인종차별적인 농담도 하지 않았고 게스트들에게 신사적이었다. 그렇게 코난이 유명세를 떨치게 되고 NBC와의 계약이 만료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CBS와 FOX사가 코난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에 초조함을 느낀 NBC는 코난에게 제이 레노가 Tonight Show의 호스트에서 물러나면 그 자리를 그에게 주겠다는 제안하게 되고, 꿈에 가까워졌다고 느낀 코난은 2004년에 재계약을 하게 된다. 게다가 제이 레노도 Tonight Show에서 5년 후에 호스트 자리는 코난 거라고 못을 박게 된다. 그렇게 5년 후인 2009년이 왔고 코난은 Tonight Show에 호스트가 되었고 (지금의 Tonight Show의 호스트인) 지미 팰런이 Late Night Show의 호스트로 내정되게 되었다. 하지만 제이 레노를 잃고 싶지 않았던 NBC는 『제이 레노 쇼』를  론칭하고 11시 30분(Tonight Show 방송시간)대로 하고 Tonight Show와 Late Night Show를 뒤로 미루게 한다. 코난 입장에서는 토크쇼의 역사이자 왕자이며 성배이기도 한 Tonight Show가 밤 11시 30분이 아닌 12시 5분으로 조정이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Tonight Show는 호스트로서 로망이자 신성한 곳이었다. 그래서 코난은 그것을 지키고자 NBC에 바이아웃을 불렀고, NBC는 그에게 향후 몇 개월 간의 공중파 토크쇼 호스트 금지, Tonight Show 관련 인터뷰 금지 등 악랄한 조건으로 2009년에 그를 보내주게 된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게 야인이 된 코난은 한몇 개월 동안 실직생활을 하다가 2010년 4월부터 6월까지 자신을 따르던 멤버들과 함께 『법적으로 TV에서 웃기는 게 금지된 투어(The Legally Prohibited from Being Funny on Television Tour)』라는 이름으로 미국 순회공연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름을 딴 토크쇼를 TBS 케이블 방송국과 계약하여 론칭하게 된다. 그리고 10년 전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라'라고 조언했던 그가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돌아와 '최선을 다해서 실패를 피하라' (You should do your very best to avoid it)고 축사한 일은 이 즈음의 일이었다.


<출처: Dartmouth College>


 코난은 축사에서 '조니 카슨이 잭 베니처럼 되기를 바랐듯이, 데이비드 레터맨도 조지 카슨처럼 되기를 바랐고, 코난과 동시대의 코미디언들도 마찬가지로 레터맨이 되고 싶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축사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가 레터맨처럼 되는 것을 자신의 꿈(욕망)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레터맨이 그토록 갈구했던 욕망( Tonight Show의 호스트)을 자신의 꿈으로 착각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욕망은 진정 그의 것이 아니라 레터맨의 욕망이었고, 레터맨의 욕망도 사실 조니 카슨의 욕망이었다고 말이다.(주석 ①: 이런 나의 생각은 강신주 철학박사의 저서 『철학 대 철학』에 언급된 욕망 부분에서 기인한다)

<역대 NBC Tonight Show의 호스트들. 출처: Google>

 그러나 코난은 나의 생각을 비웃듯이 말을 이어 갔다. '이상향(꿈) 도달에 실패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스스로 정의하게 하며, 그 실패가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잘 다루기만 한다면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계기가 된다'라고 말이다. 그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거의 커다란 실패를 통해 수립했던 계획과 쌓아 올린 커리어를 전부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끝에 진정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의 욕망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코미디 토크쇼를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시 즐겁게 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것이 잔디 밭인 지 데스크인지는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축사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졸업식에서 꿈을 좇으라 만큼 진부한 말은 없다. 지금 여러분 자신이 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든지 그 꿈은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은 괜찮다.' 이 또한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았다.

< 출처: 위키피디아>

 나 또한 많은 꿈이 있었고 바뀌었다. 꿈이 바뀌는 과정에는 항상 나의 한계를 체감하고 실패를 경험했다. 때론 실패가 나의 불성실한 태도와 부족한 능력에서 기인할 때도 있었지만 나의 녹록지 않았던 주변 환경도 한몫하곤 했었다.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지 못한 탓에 성적에 맞춰 수도권 소재 대학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다른 꿈을 키우고자 했으나 곧 외환위기가 닥쳤다. 쫓기듯이 군대에 다녀오니 나의 꿈은 이미 사치였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년 한 학기를 휴학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동기들이 봄이 오기 전에 졸업을 할 때, 나는 1년 반 후에 코스모스로 대학을 졸업했다. 그 후 1년 동안 도서관, 학원, 집을 반복해서 오가는 취준 생활을 하다가 운이 좋아 중소기업에 취업이 되었더랬다. 15년을 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기계 부품이 아니라 사람다운 꿈을 이루고자 여러 직장을 옮겼다. 개중에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회피하려는 이직도 있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반복하다가 상담심리사가 나의 길임을 확신하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목표로 삼았던 나의 이상향과 내가 바라마지 않았던 꿈에 다가가지 못했을 때마다, 자책과 회한이 교차했었다. 하지만 불혹에 가까워지면서 '내가 바라는 꿈은 무엇이 되겠다는 대상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다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글로 쓰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내 과거의 실패들은 서로 교차하고 영향을 주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불혹을 넘겼고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더욱 명확하고 가까워졌다.

<출처: TBS.com>

같은 사람이자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코난의 축사를 다 보고 나니 은은한 위안과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내가 하는 일이 즐겁고 의미 있다면
성배를 들지 못하고 주스 잔을 들어도 상관없다.
 

<Cover Picture : Team Coco, Youtube 계정에서 the first episode of late night show 영상 캡쳐>

※ 주석 ①에 대한 인용

타자가 욕망하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 '헤겔 독해 입문'을 '철학대철학'에서 인용-
"코제브는 자연적 대상에 대한 욕망도 분석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권력, 미모 그리고 명예를 욕망한다. 코제브는 우리가 그런 대상들을 욕망하는 이유는 타자들이 그것을 욕망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중략)...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모두 타자가 욕망하는 대상을 스스로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모든 욕망에는 타자의 욕망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욕망에 대한 코제브의 근본적인 통찰이었다." - 철학 대 철학, 강신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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