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한번째 책 / 약탈문화재의 세계사 / 김경임 저
12년 전, 무한도전(『도전! 달력모델』 에피소드)에서 유재석 님이 '구스타프 클림프'의 '유디트'를 연기하여 '보그 코리아 7월호' 화보에 실린 적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책들을 읽기 전이라 예술이 어떻게 사람을 위로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을 때였다. 당연히 '클림프'가 누구이며, '유디트(Judith)'가 많은 예술가들의 단골 소재였는지도 몰랐다. 그저 '금박으로 둘러친 유명한 그림을 패러디 했구나' 하고 웃으면서 방송을 즐겼을 뿐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프'(Gustav Klimt, 1862-1918)는 직설적이고 대담한 드로잉으로 인간의 죽음과 성적 본능을 거침없이 표현했던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의 스승이자 오스트리아 최고의 아방가르드 예술의 선구자였다.
그는 유채(미술)와 금/은박(공예)를 결합한 총체 예술(Total work of art)을 추구한 화가로서 오스트리아 화단에서 크게 성공했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부유층과 귀족층이라면 그에게 초상화 그림을 주문하는 것이 일종의 과시적 트렌드였다. 그리고 그가 그린 '유디트'의 실제 모델은 체코 출신 유태인 사업가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Ferdinand Blochbauer)'의 부인인 '아델 블로흐바우어(Adele Blochbauer)'였다.
'클림프'는 '유디트'를 1901년에 완성하고, 다시 아델을 모델로 한 초상화 작품을 1907년과 1912년 두 차례 완성했다. 작품명은 '아델 블로흐바우어 I', 아델 블로흐바우어 II'였다. 아델을 모델로 한 이 세 개의 작품 중에 가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은 '아델 블로흐바우어 I '이다. 이 작품이 유명한 것은 아델의 몸 전체를 감싸는 금박 상형문자 드레스와 빛을 잃지 않는 금박 배경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이 나치의 약탈 문화재였다는 것이 폭로가 되면서 오스트리아 벨베데르 미술관에서 페르디난트의 법정 상속자인 '마리아 알트만'에게 돌아오는 반세기의 유대인 회복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1938년 3월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했다. 오스트리아 시민들은 나치를 환영했다. 그리고 나치는 반유대인 정책을 펼쳤다. 나치는 블로흐바우어의 재산을 압수하고 강탈했다. 그중에는 '아델 블로흐바우어 I' 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페르디난트의 변호사이자 나치 당원이었던 에릭 휘러가 오스트리아 벨베데르 미술관에 기증을 한다. 그리고 1997년 귀족 출신 후베르투스 체르닌 기자가 벨베데르의 아델 I이 나치 약탈품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원소유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기사를 낸다. 이때 미국에 살고 있던 마리아 알트만(Maria Altmann)과 그녀의 유대인 변호사 랜달 쇤베르크는 10년 간 미국과 오스트리아를 넘나드는 법정 투쟁을 통해 '아델 I'을 되돌려 받게 된다. 이 극적인 스토리는 영화 '황금 옷을 입은 여인(Woman in Gold, 2015년 작)과 이번에 일독을 추천하는 김경임 교수님의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에서 잘 소개되어 있다.
승전국의 역사에서 문화재 약탈은 기념물 같은 승전물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의 문화재를 마구잡이로 약탈했으면서 겉으로는 인류 보편적 유산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박물관에 약탈한 피지배국의 문화재를 전시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약탈 문화재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저지르는 정신적·물질적 범죄의 증거이며, 약탈 문화재의 반환은 피해국과 국민들의 상처와 고통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열쇠라고 논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약탈 문화재 반환 움직임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1972년에는 세계의 국가들이 정부 간 문화재 반환에 관한 규정으로써 『유네스코 문화재 반환 협약』을 맺는다. 그리고 약 20년 후인 1995년에는 개인에 의한/대한 문화재 반환 규정으로써 『유니드로와 불법 문화재 반환 협약』을 맺었다. 이 두 협약은 불법 문화재 반환에 대한 국제 사회의 규범을 세웠다는 큰 의의와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약탈 문화재 환수는 어렵다. 여전히 약탈국의 박물관은 명성과 문화재 보존을 이유로 반환을 거부한다. 게다가 외교적, 정치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소지가 너무나 많으며, 해당 문화재가 약탈, 도난, 도굴 또는 진품 여부 등을 밝히는데 너무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탓도 있다. 특히나 2013년에 한국인 도굴 4인조가 일본 대마도 서해의 무인사찰 간논지(관음사)에서 훔친 금동좌상불상(탄소연대 측정상 고려시대 제작 추정)이 한국에 밀반입된 후 경찰에 검거되면서 해당 불상이 서산 부석사에서 약탈당한 문화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현재까지 불상의 소유권을 두고 한국 법무부, 서산 부석사, 일본 간논지(관음사) 그리고 전 문화재 감정 공무원이 첨예하게 법정 싸움을 하고 있다. 10년을 끌고 있는 재판은 현재 2심 중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수고에도 불구하고 약탈 문화재 환수 운동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재가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대를 연결하는 고리이면서 인류 보편의 담론을 담은 상징물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림'이나 '조각' 등의 예술 작품은 미적, 심미적,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예술품이라고 여겼지 한 번도 역사와 문명의 근원을 밝히고 동시에 민족의 맥락과 역사를 증거 하는 문화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내가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 등의 고난의 시대를 경험하지 않고 평화의 시대에 사는 세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평화를 누리는 세대의 책임 있는 자세로써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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