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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겸 Mar 08. 2022

코미디언 대통령을 뽑은 우크라이나의 진실

스무 번째 책 / 우크라이나, 드네프르 강의 슬픈 운명 / 김병호

폭격을 맞은 우크라이나 도시 / Twitter_@lesiavasylenko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도 벌써 12일이 지났습니다. 수 일 내에 수도를 쉽게 점령할 줄 알았던 러시아 군은 우크라이나 국민과 군인의 극렬한 저항으로 주춤하더니 전략을 바꾸어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과 어린이가 죽었습니다. 생생한 그 모습이 소셜 미디어에 사진과 영상으로 소개되자 세계인이 분노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Twitter_Louis Westendarp_in London

그렇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죽음을 불사하고 이 전쟁을 맞서고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3번의 암살 시도에도 불구하고 키이우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미국의 망명 정부 요청에도 거부하고 키이우에 남아서 국민과 군대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코미디언 대통령이라고 놀림을 받던 그가 이제는 처칠과 비슷한 정치적 역량을 가졌다고 언론은 말하고 있습니다. 불과 2달 전에만 해도 일부 서방 외신과 현지 언론에서는 이 참상이 있기 전부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치 역량 부족을 비판하는 기사가 있었는데 말이죠. 한국의 몇몇 언론에서도 외신 기사를 인용해서 비판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중 공중파 방송의 유튜브 채널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치 행보가 아마추어 같다는 영상을 게시했었습니다. 이를 시청한 재한 우크라이나 모델 한 분이 해당 보도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댓글을 썼습니다.


젤렌스키를 지지하고 투표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72%가 바보라고 생각하나?
 

이 질문에 대한 간결한 대답은 2019년 4월(우크라이나 대선 전)에 BBC 우크라이나의 이레나 타라누크(Irena Taranyuk) 기자가 언급한 내용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현 정권을 벌하고 싶은 국민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국정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고, 거짓말하고, 국민을 속이고, 부패와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행태 말이죠. 국민이나 국가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낀 거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정치 지도자들을 벌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경험이 전무한 후보를 뽑는 거죠. 적어도 거짓말을 하거나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사실 소연방 해체 후 독립하는 15개 소연방 국가 중에 우크라이나는 가장 성장 잠재력이 높은 나라로 평가받았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 당시 약 5천만 명의 인구, 높은 교육 수준, 비옥한 흑토, 온건한 기후, 넓은 영토, 풍부한 광물자원, 발전된 산업화 기반, 민족 정체성 등의 자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독립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크라이나는 최빈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지만 주된 원인은 하나는 정치 지도자부터 하위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만연된 부정부패 때문입니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2021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부패지수는 32점으로 122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수준은 아프리카와 남미 등의 최빈국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사업 인허가를 받으려면 정부 관리에게 뇌물을 줘야 하고, 운전면허증 발급이나 자동차 등록 등의 민원에도 뇌물을 줘야 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

 국제적인 대표 사례가 하 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리가 뇌물을 대놓고 요구한 탓에 글로벌 가구 유통 기업인 IKEA 가 우크라이나 진출을 약 10년 넘게 중단했었습니다. 나중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부패 극복의 상징으로 2020년에 IKEA 키이우 지점이 들어서긴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부정부패는 우크라이나의 경제성장을 크게 저해하는 요소입니다. 지난 30년 간 우크라이나 GDP 성장률은 변동폭이 매우 크고 하향 추세였습니다. 또한 물가상승률도 연평균 10% 이상이었습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가 부정부패로 인해 낭비된 경제손실도 상당한데, 작년 국내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크라이나의 세금 중 약 370억 달러가 부정부패로 사라졌는데 이는 국가 GDP의 약 1/4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우크라이나 경제개발통상부에 따르면 과세에 잡히지 않는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약 1/3 수준이라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독립한 지 30년 넘게 성공적인 체제 전환과 경제성장이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주된 이유는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와 ‘러시아의 종속 전략’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 / Ukraine World

부정부패의 주범,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

우크라이나의 주요 부패 세력은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입니다. 이들은 소련 공산당 시절의 관료였거나 그들과 결탁했던 사람들인데 우크라이나가 시장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국유재산을 매입한 뒤 독과점으로 빠르게 부를 축적한 신흥재벌입니다. 이들은 당시 우크라이나가 민영화에 대한 법적 규제가 미비한 것을 알고 이를 악용하여 국가 재산을 헐 값에 매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권력층과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지역 연고와 범죄조직을 이용하여 불법과 폭력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또한 이들은 장관, 국회의원, 주지사 등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면서 국정 운영에 광범위하게 참여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에너지, 철강, 금융, 화학, 조선 등의 다양한 산업뿐만 아니라 정당 조직과 언론을 장악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다양한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이들로부터 후원을 바라는 정치인들을 재생산했는데요. 독일인 학자 엘렌 보스(Ellen Bos)의 연구에 따르면 2002년에 선출된 450명 의원 중에 80%에 달하는 364명이 직간접적으로 올리가르히와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올리가르히의 정치 활동을 막지 않는 이상 우크라이나는 구조적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부패가 자신들의 기득권과 사익을 편취하는데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돌아갔습니다.


러시아의 오래된 우크라이나 종속 전략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참혹한 피지배와 독립 투쟁의 역사인데요. 한때 키예프 대공국을 세우고 융성했던 우크라이나인들은 투크르족, 몽골족,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등으로부터 연이은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공물을 받치고, 노예로 팔리거나, 농노로 살면서 혹독한 차별과 핍박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리고 17세기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에 의해 분할되면서 우크라이나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에 의해 각각 서부와 동부로 찢겨서 지배를 다시 받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폴타바에서 러시아와 스웨덴의 전투. 마제프 코작이 스웨덴의 편에 서서 독립을 갈망했다.

 그러다가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하자 우크라이나도 동서를 합쳐 통일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소련의 붉은 군대의 침략과 철저한 민족주의 탄압으로 우크라이나의 독립은 다시 한번 좌절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소연방 체제 하에서도 민족의식을 잃지 않았는데요. 소련은 우크라이나가 소연방 체제에서 순응하지 않고 이탈할 것을 두려워해 우크라이나 문화 및 언어를 탄압하고 우크라이나계 역사학자, 언어학자, 문학가들을 박해했습니다.


집단 농장의 소출 사진(좌)와 대기근에 비쩍 마른 우크라이나인(우)

특히 스탈린은 집단 농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발이 심했던 우크라이나 농민을 학살하고 작물을 약탈했는데요. 나중에 씨종자마저도 강탈하고 맙니다. 이로 인해 1932~1933년 사이에 대기근(홀로도모르, Holodomor)이 발생하는데요. 이 시기에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소련과 스탈린이 죽인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우크라이나 유대인 과학기술과 광물자원을 이용할 목적으로 우크라이나 동부에 전자, 조선, 석탄, 화학, 로켓 등의 중화학 공장과 시설을 집중 건설했습니다. 이 지역에 소련의 영향력을 두고자 인위적으로 러시아계 사람들을 이주시켰습니다. 훗날 이것이 우크라이나 동서 갈등과 돈바스 사태의 원인이 되지요.

2010년 우크라이나 2차 대선 투표 지지율

소련 붕괴 이후에 러시아는 계속해서 우크라이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취약한 경제상황을 이용하여 러시아의 정치 경제에 편입시키고자 했는데요. 대표적인 카드가 ‘천연가스 가격 인상’과 ‘우크라이나 국가 및 기업 자산의 지분 매입’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에너지를 상당히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매년 치르는 천연가스 가격협상에서 해마다 높은 가격을 요구해 가스 분쟁을 유도합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가 천연가스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우크라이나 국영 가스회사의 지분으로 갚으라며 요구했었습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전략 자산의 지분을 35~50% 보유하면 회사 경영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카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게 경제적 타격을 주고 정치적인 레버리지까지 노렸습니다. 실제로 오렌지 혁명 이후 실각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2010년에 재선 하게 된 이유는 2008~2009년 사이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우크라이나가 경제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좌)와 러시아 대통령 푸틴(우)


탈올리가르히, 탈러시아 그리고 젤렌스키 대통령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올리가르히의 만연한 부패와 러시아 종속 전략 때문에 그들이 바라는 성장에 크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전혀 바뀌지 않는 지옥 같은 현실을 바꾸어 보겠다는 희망이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뽑은 게 아닌 가 싶습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에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정치 지도자 중에 유일한 희망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는 금융재벌인 이호르 콜로모이스키의 배후 조정을 받는 꼭두각시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스캔들 그리고 판도라 페이퍼스 스캔들 등의 논란에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푸틴의 침략에 도망가지 않고 암살의 위험에 굴복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3월 1일에 EU 비상회의에서 EU 가입을 승인해달라고 촉구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는 국민 앞에 항상 거짓말하고, 기만하고, 부패와 자신들의 이익만 챙겼던 친러 정치 지도자나 올리가르히 보다 정치 경험이 없던 젤렌스키가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일 겁니다.

우리와 많이 닮은 우크라니아

이 책을 읽으면서 우크라이나와 우리가 너무나도 많은 점이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한반도를 벗어나 만주와 연해주를 호령했던 시절은 고구려와 발해 등의 삼국 국가 시절뿐입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해도 평양을 기준으로 북쪽은 당나라가 점령했었습니다. 고려시대에 몽골의 침략으로 나라가 삼벌초의 항쟁이 있었지만 조선으로 오면서 겨우 지금의 한반도 모양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조선도 임진왜란 때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명나라로 넘어가려고 했고, 병자호란에는 청나라 황제 앞에 인조가 삼고두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국난에 닥칠 때마다 한반도의 백성과 지식인은 나라를 버리지 않고 의병을 일으켜 국란에 맞서 싸워 나라를 지켰습니다. 이렇게 우리 피지배와 극복의 역사는 우크라이나와 그것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러면서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미국과 유럽연합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확전을 피하고 싶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흑해 회랑을 확보하는데 희생양일 뿐입니다. 다행인 것은 우크라이나는 이제야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난 것 같습니다. 그것도 소비에트 붉은 군대에 따른 우크라이나 독립 좌절 이후에 최고의 국난 상황에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만약 한국이 우크라이나와 같이 친중국와 친일본을 내세우는 정치 앞에서 부정부패에 휘둘리고 하위 공무원까지 뒷돈이나 부정수급받기에 급급하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나라의 부패가 어떻게 나라를 망치는지는 세라 체이스의 『부패권력은 어떻게 국가를 파괴하는가?』에서 알 수 있듯이 한순간에 나라가 망합니다.


한국은 공정과 평등 그리고 정치권의 부정부패 폭로에 부침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나라의 부패를 없애고 사회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와 기회를 보장하는 나라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확진자의 소중한 참정권을 종이봉투에 담는 선관위의 지침과 작태를 보고 개개인이 분노하여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세라 체이스의 말처럼 부패를 해결하는 것보다 무엇이 부패의 원인이 되는지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아는 시민사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투표 포기하지 마시고 소중한 한표 행사하시길 바랍니다.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SLAVA ULKRAINE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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