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네 번째 책 / 실업이 바꾼 세계사
1.
작년까지 보스턴 연은 총재였던 '에릭 로즌그렌'이 최근 한국경제신문에서 주최한 뉴욕 콘퍼런스에 나와서 금리와 정책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높은 물가와 임금이 둔화되려면 개인적으로 실업률 5%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사실 현재 미국 고용상황은 빡빡하다. 9월 실업률이 전월 3.7%에 보다 낮은 3.5%이고 일자리가 1명당 1.7개가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9월 미국 소비자 물가지수와 근원 물가지수가 전월치와 예상치를 초과한 모습을 보이면서 미국 연준이 금리인상 기조를 당장 완화로 전환(Pivot)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연준의 금리인상은 최종 금리(Terminal Rate)가 4.5%~5%에 가까울 거라는 주장에 힘을 받을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의 물가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지표로 또는 연준이 정책 전환을 하려는 시점을 파악하는 지표로써 실업률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실업률 5%는 어느 정도일까? 금리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Recession)가 오고 더 나아가 불황(Depression)이 온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답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2.
여러 경제 및 금융 서적을 읽었지만 단 한 번도 실업과 빈곤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한 세계사 책을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은 경제의 특정 이벤트를 서사식으로 이야기하거나 특정 이벤트 또는 주요 산업과 시장 그리고 그 안에 속한 상품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들이었다. 그런 책들 속에서는 실업과 빈곤은 숫자로 표현된다. 숫자를 넘어 실업과 빈곤이 사람들을 어떻게 덮쳤고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꿨는지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업과 빈곤을 일자리와 가난으로 바꾸어서 말하면 부족한 무언가가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일자리는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 일해주는 대가로 노동소득을 받게 해주는 수단이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에는 목적으로만 남는다. 특히 침체와 불황이 닥칠 때 저소득층 또는 취약계층에 있는 사람들은 일자리 하나가 거의 생명줄이나 같다. 그래서 이들은 자본가가 불황을 핑계로 임금을 깎아도 불평을 할 수가 없다. 심지어 요즘에도 노동환경과 근로조건이 필요한 만큼 여전히 개선되지 않아서 소스배합기에 사람이 빨려 들어가 죽어도 악덕 자본가는 다른 노동자로 대체하고 사고 장소에서 일을 지시한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이런 끔찍한 사고가 자본주의 시대에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실업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역사 전반에서 실업과 빈곤의 역사는 형태와 내용만 약간 다를 뿐 계속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그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바꾸어놨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3.
책에서는 사람들이 지속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면 생존을 위해 어떠한 위험과 선택을 감수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아테네에 집과 땅이 없어 실업자가 된 사람들은 페르시아 용병이 되었으며, 몽고 항쟁으로 유명한 삼별초 군사들도 믿었던 왕족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배신에도 모자라 죽음에 내몰렸기에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시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인 것은 기계가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만큼의 생산성이 좋았기 때문이며, 소말리아의 평범한 어부들은 계속된 내전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자 생계형 해적이 되어버렸다. 독일은 패전에 따른 엄청난 전쟁배상금과 생산시설 파괴 및 자본유출에 따른 실업난까지 겹치자 극우 전체주의 히틀러가 등장했고, 세계 대공황에 대한 여파로 일본은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상승과 수출부진에 따른 불황이 왔으나 중국과 조선의 침략 및 수탈을 통해 이를 타개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4.19 의거로 하야하게 된 것도 돈을 주고 사로잡은 300명 넘은 청년단에 의존하며 실업과 굶주림에 고통받는 국민과 군경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당시 월급도 못 받고 부대 식량도 부족한 상황에서 얼어 죽어 간 군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국민과 군경이 함께 이승만 하야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4.
과거에 그랬으니 미래에도 똑같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절대 없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형태로 똑같은 효과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미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수급 위기 및 팬데믹 코로나 시절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으로 인플레이션이 상당하다. 매번 발표할 때마다 역사적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이다. 유럽 연합은 에너지 기업에 징벌적 제도 또는 세금 법안을 통해 해당 기업이 걷어드린 이익을 환수하여 시민들에게 이전하려고 한다. 영국의 트러스 총리는 성장으로 포장한 급격한 감세 정책으로 영국 연기금의 부채연계투자에 마진콜을 가져와서 영국발 금융위기가 터질 뻔했다. 트러스 총리는 지금 부자와 대기업만을 위한 감세정책으로 비판받고 있으며 사임 압박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입안자의 정책 내용과 접근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하나 있다. 모두 경제를 위기에서 건져내고 시민들의 고통을 덜어내려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를 봤을 때 금리인상을 통한 수요 파괴를 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물가를 잡을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실업률을 당연히 올라갈 것이다. 실업률이 극심하게 올라가고 그들을 위한 안전벤트와 그물망 같은 사회적 구제제도 등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아마 이 책에서 그 단편을 한번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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