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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겸 Jun 04. 2017

마흔에 회사를 그만두다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의 마음인 듯하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날까지 나는 겉으로 '이놈의 회사 때려치우든가 해야지'를 내뱉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요즘 같은 불황에 어떻게든 회사에 남아있어야지'라는 생각을 가슴에 낙인처럼 새기고 있었더랬다. 한 달 급여로 한 달 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남몰래 깊은 한숨을 내쉬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내였기 때문이다. 당장 수입이 없다는 것만큼 불안한 일도 없을 것이다. 퇴직금이 있다 한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데 변동적인 지출을 감당할 리가 있을까? 결국, 어렵게 모은 자산들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날들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대책 없는 퇴직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 어떤 취급을 받던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나날들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외롭게 홀로 서 있는 제주 외돌개처럼 버티고 버텨냈다. 그러나 나는 외돌개가 아니었다. 살과 피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사람이었다.


외돌개 - 제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1월 중순의 어느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세상이 왼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곧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심하게 뒤틀렸다. 나는 쓰러졌다. 머리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입에서는 역한 기운과 함께 오심이 올라왔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바닥에 누워서 아침이 어서와 아내가 나를 발견해주기를 기다려야 했다. 아침이 오자 놀란 아내는 나를 부축하고 욕실로 데리고 가서 얼굴을 씻겨주었다. 나는 울렁거리는 머리와 배를 부여잡고 침대에 누웠다. 이 격랑이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이틀 휴가를 냈다.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 이틀 쉬면서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약을 먹으면 곧 다시 일하는 몸으로 어느 정도 돌아올 줄 알았다. 사실 아픈 부위만 다를 뿐 이런 식의 병명 찾기는 늘 있는 연례행사였다. 휴가를 마치고 낫지 않은 몸으로 회사에 다시 출근했다. 입에 약을 털어 넣고 야근을 했다. 인력 충원 없이 해야 하는 업무는 끝이 없었다. 그런 날이 반복되자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알약의 수도 늘어갔다. 물속에 몸을 구속당한 먹먹함이 난청으로 왔다. 얇고 날카로운 기계음의 이명이 내 머리의 반을 점령했다. 그리고 새 파릇한 새싹들이 어김없이 돋아나는 3월의 출근길에서 나는 다시 쓰러졌다. 내 나이 마흔이었다.


 


나는 퇴사하기로 했다. 퇴사의 이유가 단순히 몸이 아파서는 아니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큰 상처를 안고 있었다. 팀장의 괴롭힘, 직장 내 왕따, 인력 충원 없는 과도한 업무량, 고의적인 승진/고과 누락, 무능력한 인사 등 어떠한 부당한 대우와 취급을 받아도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경력자로서 더 버틸 수가 없었다. 5년을 버텼으니 이 정도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 나를 괴롭혔던 이들에게 분노의 날카로운 비수를 뽑아 들고 싶지 않았다. 뽑을 때마다 다치는 건 나의 마음뿐이었다. 그들도 나와 다를 바 없는 불쌍한 직장인이었다. 분명 그들은 내게 악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조직에서 합법적인 제도권 아래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며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그들의 방식이 유치하게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어느 조직에 공공의 적이 생기면, 그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구심점을 가지고 결속한다. 그 결속의 중심은 (크고 작든 상관없이)권력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권력에 반응하는 복종과 동조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조직에서 두 사람이 남을 때까지 공공의 적 만들기는 계속 반복된다. 기존의 적이 사라지면 새로운 적을 만들어 낸다. 그런 식으로 각각 자신들의 존재와 생존을 지켜내는 것이다. 내가 퇴사를 결정하고 비로소 그 흙탕물 싸움에서 빠져나왔을 때 내가 공공의 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만들어진 불쌍한 직장인들이라는 것을.


"인간 사회에는 두 종류의 악이 있어요. 나쁜 제도가 빚어내는 사회악이 있어요. 나쁜 사람이 만들어 내는 악이 있어요. 두 가지가 서로 얽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데 선한 사람이 제도의 피해자이고 악한 사람이 제도의 가해자면 우리가 우리 편, 나쁜 편 구분이 쉬워요. 이 (박경리의) 토지를 보면 그런 구분이 안돼요. ………(중략)……… 제도적 선악과 그 속에 들어 있는 개인의 인간적 선악은 차원이 달라요."

- 유시민 /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제 1회 통영에서 -


회사에 마지막 출근을 하던 날 이상하도록 몸과 마음이 가볍디가벼웠다. 당장 다음 달에 월급이 들어올 구석이 없는 마당에 나는 참으로 뻔뻔하게 행복해했다. 회사 사원증 카드를 1층 리셉션 데스크에 반납하고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가니 바삭거리는 5월의 햇살이 쏟아졌다. 요 며칠 두텁고 넓게 펴져서 질척거렸던 미세먼지들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국경을 넘어 저만치 멀어져 간 듯했다.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퇴근길에 가슴 한편 속에 늘 간직하고 있던 꿈이 생각났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보, 우리 제주에 가서 한 달 살아보는 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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