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희망자 문의 1 그리고 마음 반품 신청 사유

구매자 1: 서울시 직거래 대신 택배 희망, 반품 희망합니다. 사유서.

by 라화랑

사람은 싫습니다.

누군가 제게 다가오는 것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외롭습니다. 철저히 따스한 온기 곁에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펄펄 끓는 마음 몇 조각만 구매하고자 합니다.




차라리 부담되는 이성의 기대 속 상상의 그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인, 못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얄팍하고 못생긴 마음가짐을 무조건 보듬어줄 수 있는 온도의 마음이라면 돈을 주고 사야겠다- 하고 바란 적이 많았습니다.


없는 통장 잔고를 털어서라도 사고 싶었던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두렵지 않을 정도의 마음만 구매하고자 합니다.


다음은 제가 구매하고자 하는 마음의 종류입니다. 혹시 판매하고 계신 것들 중에, 비슷한 결이 있는지 문의드립니다.




1.무조건적으로 귀여워할 누군가의 눈빛


꿈틀거리는 제 마음 안에는 사실 누군가에게 한없이 기대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 특히 그 사람이 저를 꼭 껴안고


-예쁘다, 참 귀엽다.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이 사랑스러워


라고 말하며 좋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저를 쳐다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 걱정하고 잔소리하며 내게 내밀 손


저는 자기 파괴적인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전혀 돌보질 않으면서, 그런 저 자신을 즐깁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지키겠다고 생각하면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게으름에 빠진 인간이기 때문에, 벼랑 끝까지 나를 몰아 세웁니다. 그렇게 나를 벼랑 앞으로 밀어 넣을때면 누군가가 꼭 내 앞에 와서


-자, 내 손 잡아. 또 그 새 여기까지 스스로 끌고 왔단 말이지? 내가 밥 먹고 잠 꼭 자고 폭 쉬라고 했어 안 했어!


하며 내 삶을 건강히 이끌어줄 손이 필요합니다.



3. 나에게 바라는 것 없이 그저 가라앉는 바람


하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을 누군가에게 주고 받을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합니다.


물론 내 모든 것이 단점일 수도 있겠다만- 난 사랑을 할 때 특이하게도 상대방이 나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날 기다리며 자신의 일상을 망가뜨릴 때 큰 쾌감과 상대방의 깊은 진심을 느낍니다. 이미 비뚤어진 내 상태로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함께 성장하며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 그런 남들이 말하는 성숙한 애(愛)를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랑에서 나는 오히려 갑갑함과 두려움을 느껴 버려 도망치곤 합니다.


그렇기에 자주 누군가의 마음에서 회피하고 도망쳐버릴 나를 언제든지 가만히, 그저 가만히 물처럼 잠식할 바람 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4.나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강인함


-아아, 왔어? 그 새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참이라. 뭐 먹을래?


내가 몇 차례 다가오는 마음에 두려워 꽁무늬를 빼고 또다시 사라졌다가, 사라진 혼자만의 방이 너무 외롭고 추워 덜덜 떠는 시절이 찾아오면 또 염치 없이 난 어떤 따스함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그럴 때 내가 머쓱하며 찾아간 온기는, 딱 저렇게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는 듯 평온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달 뒤에 내가 불쑥 찾아가도, 연락을 며칠 동안 안 했다가 아무렇지 않게 오늘 볼래? 라고 물어도 [아, 어 그러지 뭐.]하고 무던히 계절이 찾아왔나 보다-하는 강인함이 필요합니다.




5.사랑은 하되 깊이 들어오지는 않는, 스쿠버다이버의 시선


이미 망쳐버린 내 삶은 누군가 함께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심해입니다. 그 밑에는 무슨 괴물이 살고 있는지 나조차 버거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을 다 이해하겠다며 나에게 장비도 없이 풍덩 뛰어드는 다이빙은 무척 위험합니다. 더욱이 내 앞에서 수많은 장비를 꺼내보이고서는 [네 인생 안에 이제부터 깊이 침투해도 되겠니?]하는 사랑 전문 다이버는 사양합니다.


나는 그저, 내 인생이 어떤지 저 위- 바다 밑바닥보다 하늘에 차라리 더 가까이 몸을 대고서 안경을 끼고 나를 잠시 구경만 해주었다가 이내 돌아갈 누군가의 시선만이 필요합니다. 수영을 못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내 삶에서 수영하겠다며 첨벙거리는 인어 공주는 질색입니다.


내 인생의 파도에 어찌할 줄 몰라 덤벙거리고 퍼덕일 때면 미련 없이 자신의 보트로 훌쩍 뛰어 숨어버리는, 그런 얕은 관심만을 줄 수 있는 사람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다가오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적다 보니 판매자의 마음가짐에 몇 가지는 일맥상통하는 조각이 있을 수 있지만서도

결국 내가 원하는 백 퍼센트의 마음 조각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어떤 마음을 살 수 있냐, 얼마냐 물어봤던 내게 먼저

[그렇다면 본인이 원하시는, 구하고 있는 마음가짐은 무엇인가요?] 라며 성심성의껏 찾아주려던 시간, 참 고맙습니다.



다만 거래는 없을 듯 합니다.

긴 시간 답변해주시고 관심 가져 주셨는데, 당신의 마음이 내가 원하고 있는,

구매를 희망하는 온도와는 맞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와 나도 무척 슬픕니다.



그렇다면 이만 - 좋은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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