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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Aug 27. 2021

성숙한 관계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인간관계에서 누군가를 향해 "성숙하다"라는 표현은 상당히 좋게 들린다. 연인관계에서 "성숙한 관계"라는 표현 또한 좋은 관계로 들린다.


"성숙하다"라는 것은 "어른스럽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데, 반드시 어른스러운 것만이 정답인 것일까. 어린아이 마냥 솔직한 모습을 내비칠 수 없는 관계는 좋은 관계가 아닌 것인가. 연인관계에서도, 가족관계에서도 어른의 모습이 가장 현명한 모습인 것인가.



누군가는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관계가 건강하다고 한다. 누군가는 굳이 캐묻지 않는 관계가 건강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싸우는 관계가 건강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서로 이해하는 관계가 건강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상대의 인생을 책임지려는 것이 성숙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아니라고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끝내는 것이 성숙하다고 한다. 누군가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보는 것이 성숙하다고 한다. 



건강한 관계의 기준, 성숙한 관계의 기준은 무엇이며, 실제로 그런 관계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자신의 삶이 있고, 상대의 삶은 존중하며, 어느 정도 독립된 인생을 살고, 어느 정도 의존할 수 있는 관계, 바로 건강하고 성숙된 관계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순간 이 모든 요소들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사랑하는 상대에게는 자신의 약하고 치졸하고 부끄러운 모습까지 내비쳐지기 마련이며 그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섞인 가족에게 감정하나 없는 타인에게 대하듯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몇 년 전부터 건강한 자아, 건강한 관계, 건강한 의존을 꿈꾸고 노력을 해왔지만, 현재 내가 건강하고 성숙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자신이 없다. 성숙한 관계에 관한 글을 쓰고, 현명하게 살고자 노력하며 그 통찰 과정을 글로 표현해내고 있지만, '그렇다면 본인은 성숙하고 건강한 사람이며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은 못 한다. 이 세상에 수많은 내담자를 대하는 상담자 역시 스스로 건강하고 성숙하다고 시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러 수련과정을 거친 스님이던, 세상의 이치를 발견한 철학자던, 성공한 CEO던 잘 살아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보아온 드라마들 속에는 여러 갈등이 있었어도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성공한 사람들의 집안 내력 속에는 화목하지 않은 가정이 존재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에세이 저자의 삶을 들어가 보면 전쟁터이고, 베테랑으로 여겨지는 상담사의 속사정을 들어보면 부모와의 관계에서 매일 투쟁을 한다. 어떤 집안은 인연은 끊기도 하고, 어떤 집안은 매일 전쟁을 치르면서도 관계를 이어나간다. 전자를 매정하다고 할 수도 없고, 후자를 나약하다고 할 수도 없다. 전자를 현명하다고 할 수도 없고, 후자를 어리석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애초에 답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한 인간의 다양한 측면들과 그 사람이 속해있는 문화와 환경을 고려하였을 때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를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일까. 그 모든 것들을 고려하니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므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면 본인이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을 때도 그와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있는가.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가. 실제로 그렇게 해 본 적이 있는 것인가.



타인이 보기엔 어른스럽고 성숙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어도, 실제 내 안을 들어다 보면 전쟁터이고 어린아이가 있고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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