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칸스 Nov 06. 2021

초승달을 타고 감정의 파도를 건너

팝콘별

하루를 마감하고 밤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난데없이 우울의 파도가 들이닥친다. 평소라면 무던히 지나칠 수 있는 파도가 그날따라 거세게 느껴진다. 어디에서 생긴 파도 인지도 모르는데 손 쓸 겨를도 없는 상태에서 파도에 엄습당하고 만다.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먹게 된 물들을 눈물과 콧물로 뱉어낸다. 생명을 구제하고자 겨우 잡은 배 한 척은 어쩜 이리도 연약해 보이는지 계속 흔들거린다. 파도 속으로 휩쓸리거나 뒤집어지지는 않으니 다행이지만, 오뚝이처럼 뒤뚱거린다. 배에 무슨 이름을 붙일까 하다가 연약해 보이면서도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에 초승달이라 붙인다.



계속되는 우울의 파도 속에서 초승달은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감정의 곡선을 그린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밤은 짙어지고 나의 마음은 센티해져 파도의 세기가 거세진다. 주변의 배경은 나의 머릿속을 스캔하여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고, 온 세상이 슬퍼하며 파도는 거세진다. 초승달에 올라타고 있는 나는 떨어지지 않고자 눈을 감고 초승달을 움켜잡고 현재의 상황에 집중한다. 거세진 파도 속에서 초승달은 곡선을 그리며 리듬을 탄다. 파도가 잠잠해질 때쯤 파도 깊숙이 존재하던 작고 동그란 것들이 바다 위로 떠오른다. 냄새를 맡아보니 달콤하다. 먹어본다. 카라멜 팝콘 맛이다. 맛있다. 같은 존재들이 점점 많아진다. 가까이서 볼 때는 몰랐는데 멀리 있는 것들을 보니 별처럼 반짝거린다.  



팝콘별은 중독성이 강하다. 먹고 나면 또 먹고 싶다. 눈물은 계속 흘러 파도는 출렁이는데 팝콘별은 맛있다. 우울해서 눈물이 나오는 건지 맛있어서 눈물이 나는 건지 우울한 순간에 맛있어서 감격스러움에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히 알겠는 건, 팝콘별은 맛있다는 거다. 그래서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리듬을 타며 여기저기로 옮겨가는 초승달을 단디 붙잡고 가장 가까이 있는 팝콘별을 먹으러 다닌다. 맛있다. 파도의 리듬을 타는 것도 즐겁다. 그렇게 오랜 시간 리듬을 타며 팝콘별을 먹으러 다니다 보니 어느새 멀리 왔다. 눈물로 비워낸 마음이 달콤함으로 채워진 것일까. 진정되고 있는 나의 감정상태를 반영한 듯 파도의 세기와 수심은 약해지고 주변 배경이 노란색으로 물든다. 팝콘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쉬워 닥치는 대로 먹어댄다. 배부른 탓에 초승달에 기대고 있으니 저 멀리 커다랗고 동그란 노란 정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마치 내가 먹은 팝콘별들이 만든 작품인 것만 같다. 조용해진 바다와 밝아진 배경 그리고 따스한 노란 조명을 받으니 잠이 온다. 그렇게 초승달과 함께 잠을 자러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치듯 스며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