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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Dec 08. 2020

죽음이라는 것,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사랑할 수 있기를

죽음이라는 것, 그건 무엇일까.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참 많이 겪고 들어왔다. 그렇게 오래도록 겪었음에도 적응은커녕 매 순간이 처음 겪는 것만 같다.


사람이 태어나서 인생을 살고 때가 되든, 예상치 못한 사건이든, 스스로의 선택 등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도대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저 이 생을 떠나가는 것일까. 그저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일까. 죽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한 사람의 인생까지 앗아가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어릴 적 친아빠가 돌아가셨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에 잠결에 작은 엄마로부터 들은 "아빠 돌아가셨대"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로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울증이 왔고, 내 세상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 종종 듣게 되는 나이 드신 분들의 죽음 소식, 현재도 종종 가까운 사람들에게 듣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


힘든 삶 속에서 가장 택하고 싶지만 택하기 어려운 것, 죽음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는 것은 계산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자기에게 대가가 있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몸을 던져버리면 끝나는 일인데 왜 그 선택을 하지 않고 어찌어찌 살아가는 것일까.

결국 자신에 대한 사랑이자,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 저 세상에 가버린 사람에 대한 사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었다.


누군가가 죽었다.


내가 죽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모든 사실을 인지할 수 있지만, 내가 죽는 그 순간 내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죽기 일보직전까지만 알 뿐이다. 죽는 그 순간부터는 나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이 감당할 뿐이다.


눈을 뜨고, 일어나기 싫지만 일어나고, 길을 걷고, 밥을 먹고, 누군가를 만나고, 세상을 느끼고, 누군가를 관찰하고,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고, 힘들면 쉬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내 몸뚱아리가 감당한다. 그 모든 순간순간 나의 신경체계들이 경험하고 있으며, 호르몬이 분비되고, 시냅스들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단기 기억으로 가고, 중요한 사항들은 집중이나 반복을 통해 장기기억으로 간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은 정보는 잠시 다른 쪽으로 밀려나거나 사라져 버리고 만다. 아파하고 난 뒤 회복되는 것, 아파하고 난 뒤 성장하는 것, 이 모든 것 또한 나의 몸 안에서 일어난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내가 경험하는 것이다. 세상이 움직이지만 그것을 보는 것은 나의 몸이다.


그런데 그런 나의 몸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 모든 움직임이 힘을 잃어가고 있고, 멈춰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었다는 것은 더 이상 나의 몸이 그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앞으로 다가올 좋은 일들도 경험하지 못한다. 앞으로 나에게 좋은 일이 다가올 거라는 보장은 못한다. 하지만 나쁜 일만 가득할 거라고 확신을 할 수도 없다.


나쁜 일로만 가득했던 내 세상이 정말 나쁜 일로만 가득했을까.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나쁜 것들만 지니고 있으면 그것만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좋은 것들을 한두 개씩 가져오다 보면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쁜 것들만 흡수하면 몸이 나빠지는 것처럼, 좋은 것들을 흡수하다 보면 몸이 좋아진다. 나쁜 일로만 가득했던 나의 기억들 속에 정말 나쁜 일만 있었을까, 좋은 일들은 없었을까. 분명 나의 감정은 좋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나쁜 기억이 너무 강열하여 그것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경세포들에게 좋았던 기억들을 하나둘씩 전달하다 보면 나의 과거에 그리 나쁘지많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아픈 순간들이 넘치고 넘쳤지만, 좋았던 순간이나 사랑받았던 시간이 분명 존재했고 내가 그걸 원하고 있는데 아픈 기억이 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릴 때는 힘이 약해 눌림을 당하고만 있다. 하지만 이제 제법 커진 우리의 몸과 마음은 더 이상 눌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좋았던 순간들을 끄집어 내 행복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죽어버린다면

이런 경험조차 할 수가 없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서 타인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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