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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Jan 26. 2021

가족의 진정한 의미

어디선가 그런 댓글을 보았다. "낳았다고 해서 부모가 아니며, 키웠다고 해서 부모가 아니다"


고아원으로 보내진 아이들, 입양된 아이들, 친부모지만 친부모 같지 않은 아이들.

세상에는 버려지는 존재들이 넘치고 넘친다. 그러는 와중에 출산을 장려한다. 그저 낳아서 기르기만 한다고 해서 다 부모가 되는 것인가.




나는 지난 몇십년간 친엄마의 행방을 찾았다. 기억도 나지 않고, 나에게 연락조차 없는 친엄마의 행방을 찾으려 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를 낳아주신 분이라서. 어떤 사람이었건 간에 나를 낳아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엄마의 존재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막상 친엄마와 연락이 닿았을 때 내가 경험하게 된 것은 더한 아픔이었다. 그렇게나 닿고 싶던 사람이었는데 과거를 마주하니 미치도록 끊어내고 싶었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도움이 안되는 존재였다. 나의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좋게 마무리를 지으려 했지만, 그걸 알아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아무말 없이 차단해버렸다.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가 않았다. 


현재 나에게 엄마로 계신 분은 작은 엄마이다. 나를 20년 넘게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보호해 오셨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정서적으로는 보호받지 못했다. 나보다 더 어린 동생이 있었고, 작은 엄마는 육아에 대한 지식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아이의 발달과정, 기질, 환경의 중요성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셨다. 나는 수시로 사건이나 환경에 노출되었고, 섬세하지 못한 부모님들은 나의 아픔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더불어 내가 지닌 무게, 엄마와 동생을 향한 양가감정을 진정으로 느끼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셨다. 대화가 통하는 것 같으면서도 제자리걸음 하는 이 관계를 나는 5년 가까이 겪으면서 더 이상 나의 이야기를 잘 안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주변에서 부모님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저 어떻게든 키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주려는 부모, 필요에 의해서 낳으려는 부모. 이 세상에 나온 아이는 무슨 죄이며, 덜컥 어느 환경을 맞이하게 된 아이는 무슨 죄이며, 원치 않는 죽음을 맞이한 아이는 무슨 죄일까. 사랑받고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세상이지 이렇게 힘들게 살기 위해 태어난 세상이 아닌데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주는 아픔은 나이 불문하고 가혹하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해서 덜 힘들지 않다. 그저 체념하고 살아갈 뿐이다. 체념만큼 아프고 안타깝고 절망스러운 것이 있을까. 


생명의 소중함을 안다면 신중을 기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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