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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an 03. 2020

왕년에 팔 좀 휘둘러본 여자

'운동 노마드'의 시작, 대학 응원단

나는 대학교 응원단 출신이다. 그것도 무려 ‘응원 단장’씩이나 했다. (우리 기수가 4명뿐이었다는 건 비밀) 그때였던 것 같다. 허약체질이었던 내가 사실은 '운동 덕후'라는 걸 처음 깨달은 것이. 어린 시절부터 유독 잔병치레가 많았고 체력이 약해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온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려도 100m 달리기를 23초에 뛸 만큼 느림보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쉴 틈 없이 뛰고 움직이는 응원단을 하게 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어릴 시절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냈던 아토피 증상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극도로 심해졌다. 수험생이라면 모두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특유의 예민한 성격이 피부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눈 주변, 입 주변의 표피가 벗겨지면서 얼굴이 화상을 당한 듯 붉었고, 목은 건조하다 못해 찢어져 진물이 흐르기도 했다. 끔찍한 몰골 때문에 상대방의 눈을 잘 쳐다보지도 못했다. 성격도 소심하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3이 되어 잠이 부족하자 상태는 더 나빠졌다. 고개를 늘 숙이고 다니니 어깨가 쑤실 지경이었다. 그런 처참한 상황에 누군가는 웃자고 돌을 던지기도 했다. 수업 중 갑자기 나를 보고 ‘어머 너 술 먹었니? 얼굴이 왜 그렇게 벌겋니?’ 툭 하고 던진 교련 선생의 농담에, 쉬는 시간 내내 엎드려 울었다.


단 하나의 희망은 수능만 끝나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므로 내 생에 재수는 절대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루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고, 대학에 가면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응원단이었다. 하얀 티에 빨간 테니스 스커트, 양손에는 앙증맞은 수술을 들고 V.I.C.T.O.R.Y를 외치는 그 치어리더 말고,

마치 중세시대 기사를 연상시키는 휘황찬란한 장식이 달린 조금은 유치한 차림새로 절도 있는 군무를 하는 그 응원단 말이다. 풍차같이 휘돌아가는 팔. 창공을 찌르는 손 끝.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여럿이 한 몸인양 순차적으로 착착착 점프를 하고 동시에 착지. 인간 파도를 타는 그 대단한 모습이, 어릴 적 TV에서 처음 본 후로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운명처럼 내가 입학한 대학에는 응원단이 과마다 있었다. 보통은 학교에 대학을 대표하는 응원단이 오직 하나지만, 우리 학교는 하면 누구나 응원 동아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대학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나는 대인기피증을 이겨내고 가입 신청을 했다. 나의 대학 생활은 ‘응원단’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 가운데 귀신이 접니다 ;)


당시 사랑을 받았던 대표적인 은 역시 응원곡의 조상님 격인 신해철의 <그대에게>. 하현우의 리메이크로 최근 널리 알려진 <라젠카>는 웅장한 분위기로 응원단이 무대에 입장할 때 쓰는 오프닝 곡 단골이었다. 코믹한 리듬이 매력적인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밖에도 당시 유행곡인 코요테의 <투게더>, 캔의 <가라 가라>, DJ DOC의 <뱃놀이>,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서문탁의 <처음> 등이 인기였다. 빠른 템포로 경쾌하거나 아니면 비장해야 했다. 마치 무협 영화에서 무림고수가 등장할 때처럼.


인문대 캠퍼스의 과방은 지하에 벌집처럼 몰려있었다. 과방은 학생들이 공강이나 쉬는 쉬간에 머무를 수 있는 작은 공간인데 복도를 중심으로 양 쪽에 국문학과, 경영학과, 영문학과 등등이 복도식 아파트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폭이 2미터 남짓한 복도는 늘 쾌쾌한 담배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응원단들의 땀냄새가 풍겼다. 각 과 응원단들이 음악을 틀려면 전기 콘센트가 필요했기에 과방 복도에서 동작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저마다 자신의 과방 앞 복도에서 CD플레이어 볼륨을 최대치로 높였다. 파이팅 넘치는 음악들이 다투듯 과방 복도를 메웠다. 학교는 응원단들이 튼 음악소리와 기합소리가 뒤엉켜 늘 활기로 넘쳤다.     


응원 동작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춤과는 많이 달랐다. 춤은 유연하지만 응원은 절도 있다. 뻣뻣한 나에겐 응원이 더 잘 맞았다. 단원들과 한 몸처럼 동작이 맞아야 했기에 반복연습이 중요했다. 처음 배운 동작은 스텝이었다.


 *V스텝, *점프스텝, 10년 전부터 내려오는 우리 과만의 독특한 스텝 등을 운동화가 닳도록 반복하며 익혔다. 마치 프러포즈를 하듯 한쪽 무릎을 꿇었다가 순식간에 일어나 반대 방향 무릎을 꿇는, ***'무릎 꿇기' 동작(정확한 명칭이 기억 안 난다)을 배울 땐, 양 무릎이 보라색 멍으로 성할 날이 없었다.


스텝이 어느 정도 되면 다음은 팔 동작. 두 팔이 하나로 이어진 듯 양 옆으로 펼쳐서 풍차처럼 빠르게 돌리는 동작은, 그야말로 응원 동작의 꽃이다. 무한도전 '응원단' 편을 봤다면 상상이 쉽게 갈 것이다. 선배는 두 팔을 펼쳤을 때 양팔이 막대기로 연결되어 고정이 돼 있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막상 하려니 쉽지 않았다. 두 팔이 따로 놀고 흐느적 거렸다. 각목을 하나 가져와 팔을 묶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은 날씨가 좋아 과방 밖에서 나와 주차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저기 자동차 보이지, 거기 창문 보고 서면 네 모습 보이거든? 팔 5백 번만 돌리고 와”     


엄근진 선배의 명령에 나는 울상으로 팔을 돌리기 시작했다. 자동차에 비친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다른 과 응원단이 힐끔거리자 창피해 눈물이 찔끔 났다. 어쩌겠나. 우직하게 팔을 5백 번 돌렸다. 처음엔 억지로 팔을 돌렸는데 서서히 느낌이 왔다. 핵심은 어깨였다. 어깨를 축으로 삼고 팔에는 힘을 빼는 것이다. 어깨를 돌리다 보면 원심력 때문에 팔이 선풍기 날개처럼 저절로 펼쳐졌다. 빠르게 돌리다 보면 손가락 끝으로 피가 몰리면서 뜨끈해지기 까지 한다. 나 자신을 거대한 선풍기라고 생각한다. 심장에서는 뜨거운 엔진이 헐떡거리면서 돌아간다. 동력을 받은 어깨가 마구마구 돌아간다. 팔이 바람 소리를 휘휘 다. 빨라서 멈추기 힘들다. 이대로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다!

 



응원단 활동을 하면서 내 몸도 마음도 차츰 변해갔다. 아토피가 점점 사라졌다. 발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터지고 피가 나는 바람에 중고교 시절 내내 팬티스타킹 발목을 자르고 면양말을 신던 나였다. 응원단을 하면서 20년 만에 매끈한, 평범한 발바닥을 찾았다. 얼굴도 목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나아졌다. 자연스레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수백 명의 관중이 보는 무대 한가운데서 호루라기를 불며 응원 동작을 리드했다.


한 기수 아래 후배들의 공연 사진


응원단 활동이 아토피의 묘약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관련성은 짐작이 간다. 나는 응원단을 하면서 그동안 억눌려있던 우울한 감정과 스트레스를 모두 몸 밖으로 뿜어냈다. 실제로 몸속 노폐물도 많이 빠져나왔을 것이다. 응원 연습을 하면서 흘린 땀을 한 데 모으면 커다란 정수기 물통 다섯 병 정도는 려나. 좋아하는 것에 온전히 몰입을 하고, 점점 능숙해지면서 성취감을 느꼈다. 아무리 훈련 과정이 힘들어도 함께하니 서로를 다독여주며 나아갈 수 있었다. 주말도 잊을 만큼 우린 연습에 집중했다. 집에 갈 때는 한 발자국 뗄 힘조차 남지 않아 택시를 타야 했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계속해서 움직여야 행복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피곤해서 입술이 부르트고 근육통으로 며칠을 누워있을지언정, 움츠릴 게 아니라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까마득한 응원단 시절이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오랜 세월 암흑 속에서 웅크려있다가 이제 막 번데기를 째고 나온 매미처럼, 나와 내 몸이 처음으로 소생하던 그때- 살아있음을 느끼던 그 순간순간-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V스텝: 다리를 모아 선 상태에서 양 발을 번갈아가며 45도 각도 앞으로 내밀었다가 중심으로 돌아온다.


**점프스텝: 양다리를 넓게 벌렸다가 한 호흡에 발을 바닥에 끌며 중심으로 모아 온다.


***무릎 꿇기: 양 무릎을 번갈아가면서 꿇어야 했는데 차갑고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쿵쿵 무릎을 찧었다. 이러다 늙어서 도가니 관절을 못 쓰는 게 아닌가 심히 걱정됐다. 하지만 반복 훈련의 힘은 놀라웠다. 어느새 나는 무릎을 바닥에서 거의 1mm 정도 뜬 상태로 굽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다리에 근력이 생기고 리듬탈 줄 알게 면서 더 이상 무릎을 바닥에 찧지 않고 무릎을 구부리는 기술을 습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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