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밥 Jan 09. 2020

'면 생리대' 못 잃어! 10년 써봤더니

몸과 마음이 달라졌다!


*적나라한 묘사가 들어가니 불편하신 분은 패스 :)    



2017년 겨울, 뭇 여성을 공포에 떨게 한 사건. 일명 ‘생리대 파동’이 있었다. 가임기 여성의 필수 생활용품인 생리대에 유해물질, 그것도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세상이 떠들썩했고(여자들만?), 남들은 자신이 쓰던 생리대와 언론이 발표한 발암 생리대가 같은 것인지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할 때,

나는 최대한 티 안 나게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신에게는 아직 8개의 면 생리대가 남아있습니다!’  



나는 올해로 10년 차, 면 생리대 유저다.       


생리대 파동 직후 너도 나도 '면 생리대'를 사겠다고 난리였다. 하지만 면 생리대는 수작업이 필요해 빠른 공급이 어렵다고 했다. 각종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서 ‘죄송하게도 지금 주문하면 5개월 이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공지를 내걸었다.


옆자리 동료 역시 발암 생리대의 피해자였다. 그녀는 심지어 생리 때뿐만 아니라 매일같이 팬티 라이너를 착용한다고 했다. 나는 지금이라도 빨리 면 생리대를 주문해 놓으라고 했지만, 그녀는 귀차니즘으로 결국 값비싼 일회용 유기농 생리대를 택했다. 생리대 파동 이후 면 생리대나 생리 컵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데, 왜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을까.


면 생리대를 처음 만난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2010년 겨울, 명동역에서였다. 친구와 함께 출구 밖으로 나가려는데 조그마한 탁자 위에 생리대를 깔아놓은 광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때 처음 면 생리대의 존재를 알았다. 생소한 그 물건은 일회용 생리대처럼 날개가 달려있었는데 접착제 대신 똑딱이 단추가 달려있었다. 양 날개를 팬티 바깥으로 접어 단추를 잠그면 된다고 했다. 단추는 조그만 철제 소재였다.


“안 배겨요?”

“하나도 안 배겨요. 저는 이거 쓴 뒤로 너무 편해서 일회용 못 써요.”     


가격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속는 셈 치고 면 생리대 한 장을 1만 원에 샀다. 하루에 최소 네 개는 교체해줘야 하는데 한 장을 샀다는 건, 우선 간만 보겠다는 의지였다. 그런데 웬걸, 판매원의 말이 옳았다. 나는 일회용을 더 이상 못 쓰는 사람이 돼버렸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으로 여덟 장을 더 샀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면 생리대 사용도 10년. 분명 내 몸을 바꿨으리라. 실로 그 변화를 체감했기에 그동안 수도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면 생리대 전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어느 회장님의 깊은 고뇌를 이제야 공감한다.


‘여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말 대신 글로 설명하면 좀 더 와 닿으려나.

     


'면 생리대' 썼더니 이렇게 달라졌어요


1. 그날이 1도 안 불편한다.

일회용 생리대를 쓰던 20대 중반 까지, 한 달에 한 번 오시는 그분은 정말 성가시고 짜증 나는 존재였다. 달력에 그날이 점점 가까워지면 가슴이 조여왔다. 꿉꿉한 기저귀 같은 걸 차고 있으려니 가렵고, 냄새나고, 샐까 염려하고, 그 좋아하는 운동도 못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말이다.


면 생리대의 가장 큰 장점은 편한 착용감이다. 평소처럼 팬티만 입은 느낌이다. 이질감이 없다. 흡수가 빨라 산뜻하다. 일회용처럼 냄새가 안 난다(생리혈 자체에서 냄새가 난다기보다 흡수제의 화학물질이 악취로 변한다고). 면 생리대를 만난 후, 그날에 상관없이 운동을 하고 여행을 떠난다. ‘아씨! 그날 하필 생리하는 날인데’ 할 이유가 전혀 없다.


2. 생리통이 가벼워졌다

사라졌다고는 안 했다. 나는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다(혹시 사라진 분 계시면 댓글 좀). 두통과 요통은 여전하지만 밑이 빠지는 듯한? 불쾌한 통증이 사라졌다. 일회용 생리대를 쓸 때는 생식기 주변이 쿡쿡 찌르면서 허리 아래로 내 몸이, 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다 추억이다.     


3. 생리가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자라면 공감하겠지만 일회용 생리대를 갈 때면, 내 몸에서 나온 것이지만 솔직히 혐오스럽고 더럽게 느껴진다. 누가 볼까 휴지로 둘둘 말아 얼른 쓰레기통에 넣는다. 신기하게도 면 생리대를 쓰면서 그런 기분이 사라졌다. 일회용을 사용했을 때처럼 냄새도 안 나지만 '빨아 쓰는 행위'가 인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밖에서 도시락을 시켜먹었다고 하자. 맛있게 먹고 난 후 배를 두드리며 빈 그릇을 본다. 양념 찌꺼기가 들러붙은 스티로폼 그릇들을 보면 지저분하게 느껴진다. 뇌에서 저것은 더러운 '쓰레기'다, 얼른 갖다 버려라 하고 신호를 준다. 반면, 집밥은 어떤가. 식사를 마친 후 식탁 위의 그릇들이 더럽게 느껴지던가. '저걸 언제 치우지?' 하는 생각은 들어도 그릇 자체가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깨끗이 씻어서 다시 사용할 '내 물건'이기 때문에.


4. 치킨 16마리를 더 먹을 수 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생리대 가격은 OECD 국가 중 가장 비싼 개당 331원 꼴이라고 한다. 여성의 한 달 평균 생리대 사용 개수는 약 40개. 1년이면 보통 158,800원이 든다고 한다. 3년이면 476,640원을 생리대 값으로 지불한다.     


경험 상, 면 생리대 12개를 가지고 있으면 3년 정도 쓸 수 있다. 중형은 개당 약 11,000원으로 12개면 132,000원. 일회용 사는 것의 3분의 1 이상, 게다가 1+1 행사를 자주 하니 6분의 1까지 생리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5. 지구에게 덜 미안하다

나만 안 아프면 말도 안 한다. 일회용품으로 아파할 지구에게 덜 미안하다. 위에서 언급했듯 한 달 평균 40개, 1년이면 480개. 한 여자가 480개의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알다시피 이 세상의 반은 여자다.




사실 4, 5번은 대다수에게 부차적 일지 모른다(나에겐 매우 큰 의미다). 하지만 1, 2, 3번 이유만으로도 심각히 고민해볼 내용이다. 여자의 생리 기간은 양으로 따져도 인생에서 긴 시간이다. 20대라면 앞으로 약 30년, 30대라면 20년은 생리대를 더 써야 할 텐데, 도대체 언제까지 씩씩거리며 참고 살 텐가. 편하고 볼일이다. 주 52시간 근무만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아니다. 몸이 불편한 상태로 행복을 논하는 건, 여권 없이 인천공항에 가는 것과 같다.

     

'왜 여자로 태어나서!
이런 불편과 고통을 겪어야 하지'


면 생리대를 쓰면서 여자라서 당연히,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한다고 믿었던 고통이 사라졌다. 아니, 그렇게 믿었던 관념이 스르르 녹아버렸다고 해야 하나. 생리가 불편한 게 아니라, 일회용 생리대가 불편했다는 걸 깨달았다. 생리는 말 그대로 생리현상일 뿐이다. 트림이나 방귀가 나올까 봐 겁나서 여행을 못 가고 몸 사리면서 살지 않는다. 역시 인생은 장비빨이다. 장비만 바꿨을 뿐인데 삶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 몸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다.


몸에 찾아온 변화가 하나 더 있다. 20대 후반 즈음부터 난소 근처에서 자라던 혹이 어느 순간 성장을 멈췄다. 산부인과에서 이 혹은 보통 계속 자랄 테니 더 커지면 수술을 하자고 했었다. 성장을 멈추는 건 흔치 않은 경우라고 놀라워했다. 인과관계를 명확따질 수 없으니 뭐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면 생리대의 장점을 알겠지만 도저히 귀찮아서 못쓰겠다, 계속 일회용을 쓰겠다고 하면 그 또한 존중한다. 그저 좋은 걸 함께 누리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면 생리대, 그것이 궁금하다>

Q. 으... 피 묻은 걸 어떻게 들고 다니죠?

A. 저 같은 경우, 양이 적은 편이라 중형 3개를 들고나가면 하루 종일 충분합니다. 양이 많은 사람도 5개면 충분할 텐데요(일회용보다 덜 써요). 교체할 때, 면 생리대를 팬티에서 떼어낸 후 생리혈 부분이 안 쪽으로 들어가게 접어서 똑딱이 단추로 잠그면 방수 천이라 피가 새어 나오지 않아요. 저는 3~4개를 그런 식으로 접어서 파우치에 넣어 다닙니다. 찝찝하면 하나씩 지퍼백에 넣은 다음 파우치에 담아도 되구요.


Q. 세상 귀찮은데 어떻게 빨죠?

A. 저녁에 보통 샤워 하시죠? 저는 샤워할 때 빨아요. 어차피 몸에 물 묻혔는데 어려운 일 아니니까요. 머리에 샴푸질을 한 후, 면 생리대에도 샴푸를 좀 짜서 비빈 후 핏물 뺍니다. 이불 빨래를 하듯 발로 즈려밟아요. 처음엔 샤워실 바닥이 피바다(?)가 돼서 당황할 수 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적응되더라구요. 똥 아니고 피입니다 여러분! 더럽지 않아요~




작가의 이전글 왕년에 팔 좀 휘둘러본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