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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an 16. 2020

두통 더 이상 참지 마세요

하마터면 허니문 못 갈 뻔했다


정신없이 결혼식을 마쳤다. 아무리 간소하게 한다고 해도 끝내고 나면 속이 뻥 뚫리는 게 결혼식이다. 이제 긴장의 연속이었던 날들에 잠시 쉼표를 찍고, 천국–허니문-으로 향할 일만 남았다! 오후 결혼식이었던 우린 공항 근처 호텔에서 첫날밤을 묵고 다음날 하와이로 떠날 계획이었다. 긴장을 많이 했던 탓일까, 식 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자꾸만 하품이 나고 속이 더부룩하다. 불길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분이 오셨다. 지긋지긋한 두통!     


눈 옆 관자놀이가 펄떡펄떡 날뛰기 시작한다. 누군가 머리에 철모를 씌우고 망치로 사정없이 두드리는 것만 같다. 할 수만 있다면 뇌를 꺼내 찬물에 담그고 싶은 심정이다. 신랑이 공항 약국에서 허겁지겁 타이레놀을 사 왔다. 전혀 차도가 없다. 갑자기 속까지 울렁거린다. 토하고 싶다. 화장실로 달려간다. 5분 간격으로 구역질이 난다. 누가 보면 전날 얼큰하게 한 사발 들이킨 줄 알겠다. 텅 빈 속으로 신물이 날 때까지 일곱 번을 더 토했다. 이 몸으로  8시간 동안 비행기를 탄다고라? 신랑아, 니 혼자 가라 하와이.     


“나 좀 누워있을게”      


공항에 다행히 누워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시간여를 자고 일어났다.     


“좀 괜찮아?”

“헐? 몇 시야?”     


다행히 비행기 수속 시간이 좀 남았다. 잠을 자고 나니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자비로운 두통님께서 허니문을 허하셨다. 도대체 왜! 나는 중요한 일을 앞두거나 끝내면 어김없이 두통이 는 걸까. 그 원인을 찾고야 말겠다.     



얼마 후 생에 처음으로 신경과를 찾았다. 10여 년 만에 드디어 정체모를 두통의 이름을 알았다.          


“전형적인 편두통 증상이네요”     


상담 전 미리 작성한 설문지를 보더니 의사가 말했다. 간호사가 준 설문지에는 20여 가지의 증상 체크리스트가 있었는데 나는 거의 모든 사항에 체크를 했다. ‘어쩜 내 증상과 이렇게 똑같지?’ 놀라울 정도였다.     



       <편두통 증상 설문>

잠을 못 자거나 많이 잤을 때 심하다

생리 전후에 심하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심하다

갑자기 하품이 많이 난다

속이 갑갑하다

속이 울렁거리거나 토하기도 한다

과식을 했을 때 심하다

밝은 빛을 보면 심하다

와인이나 치즈를 먹으면 심하다          



“편두통은 한쪽 머리가 아픈 거 아니에요? 전 양쪽 다 아픈데”

“꼭 그렇진 않아요.”     


흔히 편두통이라고 하면 그 이름 때문에 한쪽 머리만 아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알고 오랜 세월 편두통을 앓고 있다는 사실 몰랐던 것이다. CT를 찍어 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엄마도 두통을 자주 앓는 편이니 유전인가 싶었다.



병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세요

어떤 대상에 대한 이해는 그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 ‘통섭’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주장이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 그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면 그 대상의 이름이 적절한 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최인철, <굿 라이프>, p.29     


<굿 라이프>의 저자인 최인철 교수는 사람들이 ‘행복’ 추구를 지나치게 가벼운 의미로 여기는 이유가 행복(幸福)이라는 한자어에 ‘우연’이라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람도 처음 만나면 통성명부터 하듯, 무엇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이름부터 알아야 한다. 병도 마찬가지다. 두통이라는 이름이 오해를 만들었다. 정확한 병명을 알고 나니 나는 병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고, 해결방법을 찾아나갔다.     


편두통은 왜 생기는가. 의학사전을 찾아보면 ‘뇌신경 및 뇌혈관 기능의 이상으로 인해 발작적,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뇌질환’이라고 한다. 뇌질환이라고 하니까 무섭게 느낄 수 있는데 남들보다 뇌신경이나 혈관이 민감하다고 보면 된다. 성격이 둥글둥글 무던한 사람이 있고 예민 보스가 있는 것처럼.


여자에게, 특히 20대에서 50대 사이에 많다고. 중년 여성 3명 중 1명이 편두통 환자라고 하니, 꽤 많은 여성이 편두통으로 고통받고 있는 셈이다.

*출처: 김병건 교수(을지대학교 의학과 신경과)     


‘두통 그까이꺼 약 먹으면 되지’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편두통을 앓는 사람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대한두통학회가 2018년 국내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편두통 유병 현황과 장애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편두통 때문에 결근이나 결석, 가사노동을 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환자가 31.2%, 가사 능률이 떨어졌다는 응답도 44.8%다.      


실제로, 편두통이 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오기 하루 전날부터 온몸이 나른하고 무기력해진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눈알이 빠질 듯이 아프고 속까지 뒤집어져서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타이레놀 두 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그냥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참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 재수가 없으면 3일까지도 간다. 이런 편두통을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거의 매주 한 번은 앓았다.      


파우치에 늘 챙겨 다니는 비법?

지금은 한 달에 한두 번 앓는다. 반으로 횟수가 준 것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고통스럽지도 않다. 비법은 늘 들고 다니는 파우치 속에 있다.


20대 때는 타이레놀이나 탁센으로 얼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성이 생긴 건 지 점점 약효가 떨어졌다. 신경과에서 편두통약을 처방받은 뒤로 고통에서 해방됐다. 신경과에서 처방해주는 편두통약은 크게 두 가지다. 조짐이 왔을 때 먹는 증상약, 그리고 애초에 막아버리는 예방약이다. 증상 약은 가지고 있다가 편두통 조짐이 온다 싶으면(하품, 나른함, 띵함) 얼른 먹으면 된다. 중요한 건 타이밍, 이미 편두통이 한창 진행해버리면 약빨이 잘 안 듣는다. 적시에 먹는 약효는 놀랍다. 저돌적으로 돌진하던 편두통이 방향을 틀어 나를 피해 간다. 예방약은 혈압약처럼 매일 같이 챙겨 먹는 약이라고 했다. 아예 오는 걸 차단하는 건데 아무래도 매일 먹어야 하니 조심스럽다. 그래서 정말 심각한 사람들에게 권한다고 했다.      


나는 조짐이 생기면 즉시! 먹을 수 있도록 증상 약을 5일 치 씩 처방받아 늘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닌다. 떨어질 때쯤 신경과에 가서 다시 처방받아온다. 지갑에 현금다발이 두둑한 것 마냥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플라시보 효과의 일종일까? 편두통약을 처방받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면서 편두통 횟수도 서서히 줄었다. 이제 나는 편두통이 두렵지 않다. 적절하게만 대응만 하면 스치듯 안녕할 수 있으니. 이제는 무조건 약 안 먹고 버티지 않는다. 적어도 편두통에서는 그게 미련한 방법임을 알았다. 마음을 고쳐먹자 편두통이 심지어 편리하게도 느껴질 때도 있다.     


편두통 때문에? 편두통 덕분에!

나는 생리 하루 전날이면 어김없이 편두통이 온다. 생리 전 증후군 중 하나라고. 때문에 갑작스러운 생리 시작에 당황하는 일이 없다. 알람시계처럼 ‘내일 시작할 것이니 생리대를 준비하시오’하고 편두통이 신호를 준다.    


흔히 체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하고 소화제를 먹는데 그 반대 가능성을 놓친다. 체한 게 아니라 편두통이라 속이 갑갑하고 울렁거릴 수 있다. 머리가 아파서 속이 안 좋은데 두통약 대신 소화제만 먹고 있으니 증상이 가라앉을 리가. 편두통을 이해하면 엉뚱한 조치를 피할 수 있다.


잠을 잘 자다가 갑작스럽게 깨거나, 지나치게 잠을 많이 잘 때도 편두통이 온다. 이것이 편두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수면 패턴을 일정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신랑에게도 나를 깨울 때는 갑작스레 놀라게 하지 말고, 천천히 깨워달라고 말해두었다. 과식이 편두통을 유발할 수 있다 하여 배부르면 숟가락을 내려놓는 습관을 들였다. 원인을 알자, 해결 방법을 찾아 노력했고 내 생활 전체가 건강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편두통, 그것이 궁금하다>

Q. 편두통 조짐을 어떻게 알죠?

A. '두통 일기'를 써보세요. 저는 편두통이 발생한 날 스마트폰에 간단히 메모를 해요. 과식 여부, 무엇을 먹었는지,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었는지, 수면은 적당했는지, 몇 시부터 통증이 시작했는지 등을 간단하게 기록해두는 거죠. 그것이 쌓이면 데이터가 되고 편두통이 어떨 때 주로 찾아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Q. 편두통이 있으면 커피를 끊어야 할까요?

A. 카페인은 뇌 표면의 혈관을 수축시켜 일시적으로 두통 증상을 가라앉힌다고 해요! 그래서 머리가 아플 때 커피를 마시면 가라앉는 느낌이 들죠. 문제는 카페인 효과가 떨어지면 다시 시작한다는 건데요. 그래서 커피를 안 마시는 게 좋다는데, 평소 커피를 매일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안 마시면 오히려 편두통이 생긴답니다(그래서 저는 맨날 마시기로). 아무래도 서서히 줄여나가는 게 좋겠죠?
*참조: 대한두통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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