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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Dec 09. 2019

올인클루시브는 과연 함정일까?

돈으로 (똑똑하다는) 착각을 산다


요즘 현금 들고 다니는 사람 잘 없다. 오히려 현금 안 받는 매장도 늘었다. 편의점에서 1천 원 이하의 물건을 살 때 카드를 내밀어도 전보단 덜 민망한 분위기다. 나는 신용카드를 폰에 넣은 형태인 삼성페이로 보통 결제를 한다. 손안에 쥔 폰에 엄지손가락 하나만 보태면 되니 카드보다 더 간단하다. 이 편리한 결제 기능 하나만으로도 갤럭시폰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홍보할 만큼,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주머니는 점점 더 얇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신용카드라는 달콤한 녀석

<부의 감각>의 저자인 댄 애리얼리는 신용카드를 마약으로 표현한다. 소비의 고통을 덜어주기 때문에 끊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지 돈 쓰는 행위 자체가 덜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현금 지불은 돈이 내 수중을 떠날 때 부정적인 측면을 더 생각하게 만들지만 신용카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유도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는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자동이체와 같은 시스템(물론 삼성페이도 포함될 것이다)은 지불고통을 줄여주기 때문에 금융 '헬멧'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지불의 고통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시간 변동의 착각이라는 도구를 채용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이 착각을 두 번 씩이나 하게 한다(한 번은 나중에 지불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게 만들고, 또 한 번은 이미 지불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 댄 애리얼리, <부의 감각>143p     


평소 사고 싶었던 구두를 하나 장만한다고 하자.      


현금으로 계산하려면 (이런, 생각만 해도 어색한 걸) 우선 1. 가방 깊숙한 곳에 있는 지갑을 꺼낸다. 2. 지갑을 열고 지폐가 얼마나 있는지 세어본다. 3. 구두 가격만큼의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기다린다. 4. 거스름돈을 받아 지갑 속에 집어넣는다. 5. 쓰린 속을 달래며 한층 얇아진 지갑을 가방 속에 넣는다.

    

삼성페이로 계산하면? 1. 손에 들고 있던 폰 잠금장치를 연다 2. 엄지손가락을 댄다. 3. 점원에게 영수증은 됐다고 말한다(모바일로 보면 되니까)

고통을 자주 느끼면 아낄 수 있다. 당신의 선택은?

아무래도 현금을 낼 때는 돈을 만지고 느끼고 분류하고 꺼내고 세는 동작을 하면서 상실감을 느낀다. 당장 내 수중에서 돈이 빠져나갔다는 강렬한 기분이다. 결제시스템이 다양해지고 특히 간소화되면서 우리는 확실히 ‘돈 쓴다는 느낌’을 덜 느낀다. 그래서 아무래도 돈을 더 쓰게 된다. 그것은 그저 잘못된 일일까.   


올-인클루시브는 역시 '올았다'(?)

지불 ‘방식’으로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는 또 다른 예가 신혼여행으로 선호하는 올 인클루시브(all-inclusive)라는 선불 상품이다. 미리 거액을 결제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걸 ‘공짜’로 누린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책에는 올 인클루시브 상품이 아닌 그때그때 결제하는 방식의 신혼여행을 택한 커플의 예시가 나온다. 무엇을 먹거나, 시도하려고 할 때마다 지불의 고통을 느끼니 다툼이 자주 생겼다. 여기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그동안 올-인클루시브와 같은 선결제 상품은 무조건 '상술이다, 나쁘다, 속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하지만 평생에 한 번뿐인(부디 그렇길) 허니문에서 고통의 순간을 줄일 수 있다면, 그래서 더 행복한 ‘시간’을 살 수 있다면 어쩌면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지불방식이 간편해 지불을 의식하지 못하고 과소비할 수 있음은 분명 주의해야 하지만, 이러한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 이를 역 이용하여, 인생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순간에 고통을 피하고 온전하게 집중하는 방법도 괜찮을 것이다. 무조건 아끼고 보는 게 현명하다고 믿어왔었는데 살짝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올-인클루시브가 그렇게 좋다든데... (다음 생애는 꼭)


정상가를 부풀려 할인해주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도 우리가 자주 넘어가는 분야다. 우리는 정말 몰라서 속는 것일까.     


- 6만 원 가격표 붙은 셔츠

- 10만 원 가격표가 붙은 셔츠 / ‘오늘만 40% 세일! 단돈 6만 원!’


실제로는 같은 셔츠라도 후자가 왠지 더 고급스러운 소재를 사용했을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원가가 더 비싸다고 믿으니). 차라리 같은 값이면 속는 편을 택하고, 좋은 옷을 샀다는 만족(혹은 착각)을 산 건 아닐까.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라면, 인터넷에서 할인가로 구매한 티셔츠가 사실은 정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의 감각>을 읽은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집, 티셔츠 잘 파네’     


만약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였다면 아마도 그는 그 유명한 상대성 이론을 ‘E=MC2’이 아니라 ‘100달러 > 200달러 반값 할인’으로 바꿨을 것이다.

- 댄 애리얼리 <부의 감각> 63p     


이밖에도 <부의 감각>에는 돈에 얽힌 다양한 심리가 나온다.     


소유 효과라는 것이 있다. 한 실험에 따르면 똑같은 머그컵이라고 해도 30초 동안 컵을 만지게 하면 가격을 더 높이 매긴다는 것이다. 옷가게에 가면 일단 입히고 보는 언니들, 사용해보고 마음에 안 들면 100% 환불! 을 외치는 홈쇼핑은 이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한 것이다.     


손실회피는 10만 원을 잃었을 때 느끼는 고통의 강도가 10만 원 얻을 때 느끼는 즐거움의 강도보다 두 배 크다는 것, 즉 인간은 손해에 훨씬 민감하다는 뜻이다.       


매몰비용은 그동안 쓴 돈(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의사결정을 고수하는 걸 뜻한다. 돈뿐만이 아니다. 성격차이로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이 남자와 살아온 내 인생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헤어지지 못하는 한 여인도 이를 느끼고 있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뒤를 보지 말고 미래가치를 보라!    




댄 애리얼리의 <부의 감각>에서는 이처럼 우리가 돈과 관련된 골치 아픈 선택들을 할 때 '알아두면 쓸모 있는' 다양한 심리를 알려주고, 똑똑하게 선택하는 가이드를 제시한다.


내가 행동경제학을 처음 접한 책은, 리처드 탈러의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이었다. 그 책을 읽었을 땐, 무릎을 탁! 치며 ‘앞으로는 손해 안 보고 살 수 있겠군’하고 느꼈다면, <부의 감각>에서는 색다른 견해를 얻었다. 오히려 이러한 멍청한 선택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조금은 숨쉴틈을 마련해주는 건 아닐까, 하는 게으른 생각 말이다.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시스템을 정확히 알면 우린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보다 덜 장황하고 훨씬 가독성도 좋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하는 저자의 어설픈 유머와 드립이다. 딱딱한 경제이야기를 재미있게 풀고자  거 같은데 내 코드와는 안 맞아 '지불의 고통'에 버금가는 고통을 치러야 했다.





Q. 알면서도 자주 넘어가는 상술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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