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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Dec 16. 2019

미세먼지보다 훨씬 더 위험한 '미세수면'

한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1년 전쯤 일이다. 제안서를 쓰느라 꼬박 밤을 새우고 이른 아침 퇴근을 해야 했다. 나는 장롱 속에서 잠자던 면허를 깨운 지 얼마 안 된 쫄보였지만, 출근 시간 1호선에서 두 시간 동안 서있을 자신이 없었다. 쓰린 속에 커피를 원샷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남들이 출근하는 방향과 반대로,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붉게 떠오르는 태양도 꽤나 멋졌...

앗! 눈을 떴더니 이불 속이다. 면도날로 도려낸 듯 주차한 기억이 없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집으로 온 걸까?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수면전문가인 매슈 워커는 그의 저서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에서 수면의 중요성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평생 동안 잠을 연구했다는 ‘수면의 달인’ 매슈 워커가 말하는 인간의 적정 수면시간은 8시간이다. 이 책은 왜 8시간 이상을 꼭 자야 하는지, 이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 몸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과학적인 근거로 설명한다.     



술 취한 사람 - 잠 못 잔 사람의 공통점

4시간 자고 멀쩡하게 운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술 마신 사람이 정신 멀쩡하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고 한다. 술 취한 사람이 자신이 취한 것을 모르 듯, 잠이 부족한 사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간혹 특별한 유전자를 타고나 4시간만 자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는 한다. 다만 그 수는 지나가다 벼락 맞을 확률보다 더 적다고.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잠을 5시간 잔 상태에서 운전하면 맨 정신일 때 보다 사고 위험이 3배 증가하고, 4시간 이하로 잠을 자면 11배 이상 높아진다. 기하급수적으로 사고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졸음운전으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가 알코올과 약물 때문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 건수 합친 것보다 많다는데, 야근이 많은 우리나라는 더하면 더할 것이다.

     

졸음운전이 위험한 이유는 ‘미세수면’ 때문이라고 한다. 미세수면은 자신이 졸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찰나의 순간 잠드는 것을 말한다. 음주운전자는 반응이 느리지만, 미세수면은 반응을 아예 멈춘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다시피 사고가 일어나는 데 필요한 시간은 2~3초면 충분하다. 미세수면은 7시간보다 적게 면 겪을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이 위험지대 안에 있을 것이다.     


저자는 졸음운전뿐만 아니라 심혈관질환, 암, 치매와 같이 우리의 생명을 위험하는 다양한 질환 역시 수면 부족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우리는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데, 재미있는 점은 음식을 영양소별로 골고루 섭취해야 하듯, 수면도 두 가지 종류를 고루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이라고 다 같은 잠이 아니다?!

잠에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비렘수면과 렘수면이 있다. 비렘수면은 깊은 잠으로, 꿈을 꾸지 않는 상태다. 렘수면은 잠을 자고 있으나 뇌파는 깨어있는 상태로 보통 꿈을 꾼다. 잠을 자는 동안 이 두 가지 상태가 교차되는데 이 둘의 역할이 다르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비렘수면은 새로 학습한 정보를 뇌의 장기 기억 저장소로 옮겨서 안전하게 보관한다. 우리 기억은 뇌의 해마라는 곳에 저장되는데 용량이 한정돼 있다. 비렘수면에 빠지면 우리의 기억은 단기 저장소인 해마에서 장기 저장소인 피질로 옮겨지고, 해마에 여유 공간이 생긴다.


렘수면은 새로 생성된 기억들을 취해서 내 삶의 일대기를 이루는 목록과 대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과정에 서로 관련 없던 정보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생기고 창의력이 길러진다. 렘수면은 운동 기량을 미세하게 다듬는 기능도 있기 때문에 운동 성과를 내려고 잠을 줄이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다. (우사인 볼트는 이를 확보하려고 경기 몇 시간 전 낮잠을 잔다고)     

 

렘수면은 이별한 사람에게도 꼭 필요하다. 흔히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렘수면 중에 꾸는 ‘꿈’이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렘수면은 정보가 풍부한 열매에서 쓰디쓴 감정 껍질을 벗겨 내는 우아한 솜씨를 발휘한다. 덕분에 우리는 원래 그 고통스러운 기억에 짙게 배어있던 감정에 옥죄는 일 없이 살면서 겪은 인상적인 사건들을 떠올리면서 유용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매슈 워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299p     


(8시간 수면 기준) 수면 전반기엔 보통 깊은 비렘수면,  잠을 깨기 두 시간 전엔 렘수면 상태라고 한다. 늦게 자면 비렘수면을 잃고, 일찍 일어나면 렘수면 잃는다. 비렘수면을 잃으면 기억력에 이상이 생기고, 렘수면을 잃으면 창의력과 운동기능이 떨어진다. 영양 불균형 상태처럼 우리 몸과 정신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진 수면을 모두 사수하기 위해 8시간 수면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식단, 운동과 함께 잠을 건강의 3대 기둥이라고 말했던 자신의 말을 정정한다고 했다. 잠은 나머지 두 기둥을 받치는 토대라고 말이다.     




방송 준비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밤을 꼴딱 새기도 했던 나는, 최근 1년간은 한 번도 밤을 새운 일이 없었다. 일의 양을 대폭 줄였고 요즘은 보통 8시간에서 9시간 잔다. (진심 행복하다) 돈 욕심보다 잠 욕심이 많기도 하지만, 자주 아프면서 무엇보다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다. 언제까지 이 잠을 누릴 수 있을진 모르겠다. 아직 아이가 없고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육아에 돌입하거나 돈이 다 떨어지면 나는 또 잠을 줄여야 하는 비상사태를 맞이할지 모른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듯, 누구나 그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 똑같이 주어진다. 회사를 다니면서 육아에, 자기 계발까지 하려면 보통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게 잠이다. 8시간 수면을 보장하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시간표'에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화는 수면부족 못지않게 우리 건강에 해롭다. 그러므로 우린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살아가야 한다.      


같은 독서모임을 하는 한 분이 이 책을 읽고 야근이 은 직장을 때려치우셨다고 들었다. 다른 일을 찾으셨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의 선택이 굉장히 용감하고 현명하다 생각한다. 일은 어떻게든 다시 찾으면 되지만 잃어버린 건강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각주에도 인용되었던 <맥베스> 2막 2장의 한 구절을 소개하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잠을 잘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모두가 꿀잠을 잘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    



고통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 주는 잠,
매일의 삶을 마감 짓는 잠,
힘든 노동 뒤의 샤워,
상처 받은 마음의 향유,
위대한 자연의 두 번째 과정,
인생의 향연의 자양분을.

- 셰익스피어 <맥베스> 중-





Q1. 꿀잠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요?

Q2. 바쁜 일상 속에서 잠을 확보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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