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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an 10. 2020

이게 다 하루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는 일을 10년 넘게 했지만 과연 나만의 확고한 글쓰기 철학이란 게 있었을까. 어쩌면 기계적으로 써온 건 아닐까. 질문의 답을 대작가님들께 구해보자. 글쓰기 책의 교과서로도 불리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다. 두 권 다 소설가의 자전적 에세이다.     


<유혹하는 글쓰기>는 지인의 추천으로 아주 오래전 사서 읽었는데 도무지 내용이 기억에 없다. 이번에 책장 구석에서 겨우 찾아냈는데 책이 누렇게 변해있더라(죄송합니다 스티븐 옹). 하루키 책은 지극히 팬심으로 샀다. 나는 특히 하루키의 최근 장편소설을 좋아한다. 어딘지 모르게 기이하고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애매하고 묘한 기분,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서.     


두 작가의 삶과 글쓰기 철학, 작법 등을 엿보며 자연스레 나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냈다. 스티븐 킹, 하루키와의 공통점이라니. 생각만 해도 신이 나지 않는가! 반면, 그들과 천성적으로 다른 점을 발견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아, 나는 소설가는 못 되겠구나’     


이게 다 하루키 때문이다! 최근 소설 쓰기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퐁퐁 샘솟고 있다. '팩트 위주의 글만 써온 나 같은 사람이?' 스스로에게 반신반의하던 차였다. 하루키는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편소설 ‘한 편’ 정도는 쓸 수 있다는 거다. 다만 지속적으로 소설을 쓸 사람은 무언가 다른 특성이 있다고 했는데, 요약하자면 ‘템포가 느린’ 사람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3p     


소설을 쓰는 일은 ‘일 년쯤 시간을 들여 기다린 핀셋으로 병 속에 세밀한 배 모형을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와! 생각만 해도 나랑 상극이다. 소설가는 효율성 추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했다. 와! 나랑 딱 반대다. 나는 불확실성을 매우 힘들어하는 사람이며 빠른 해결을 는 사람이다. MBTI 검사 결과지에 노력을 ‘절약’하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을 보고 당황하기도 했으니. 그뿐인가. 독자의 시간을 아껴주려고 글 호흡도 짧게 쓰는 편이다(라고 합리화해본다). 나는 록에 환장하고, 하루키는 재즈를 즐긴다. 그래, 나는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지만 하루키랑 영 반대다. 비슷한 부분이라면 꾸준하게 운동을 즐긴다는 점.


반면, 스티븐 킹은 나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나는 ‘구성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면 구성을 잘 안 잡고 글을 쓴다. 아무 말 대잔치로 모니터 위에 낱말을 토해내다가, 퇴고를 하면서 구성을 살펴보곤 한다. 문단 단위로 드래그해서 글의 배치를 덩어리 째 바꾼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것이 천만다행이다. 종이에 글을 썼으면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가 지쳐서 작가를 포기했을 거다, 에 내 기계식 키보드를 건다.  


플롯은 좋은 작가들의 마지막 수단이고 얼간이들의 첫 번째 선택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플롯에서 태어난 이야기는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      

나는 플롯보다 직관에 많이 의존하는 편인데, 그것은 내 작품들이 대개 줄거리보다는 상황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덕분이기도 하다. <중략> 상황이 제일 먼저 나온다. 등장인물은 그다음이다. 마음속에서 그런 것들이 정해지면 비로소 서술하기 시작한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202p


소설은 아니지만 내가 글 쓰는 방식과 비슷하다. 보통 글을 쓸 때 상황을 먼저 떠올리고 그것을 즐겁게 쓰다 보면 갑자기 주제나 메시지가 알밤이 벌어지듯 툭, 하고 고개를 내민다. 스티븐 킹은 소설 쓰는 일을 땅속에 묻힌 화석을 발굴하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일단 화석을 찾았으면 각종 연장(낱말, 문법, 문단 등)으로 조심스레 파내기 시작한다. 결국 크든 작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글 쓰는 방법에 정석이란 없다.’ 이것이 스티븐 킹이 나에게 준 메시지다. 그동안 무계획적인 글쓰기 방법에 은근히 콤플렉스를 느꼈다. 남들처럼 일부러 틀부터 짜려고 시도도 해봤으나 역효과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단다. 무려 스티븐 킹도 그렇게 쓴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창작의 성격에 하루키도 동의했다.


어떤 의미에서 소설가는 소설을 창작하는 것과 동시에 소설에 의해 스스로 어떤 부분에서는 창작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53p


내가 글을 쓰지만, 글이 나를 끌고 가기도 한다. 그게 정말 즐거운 글쓰기다. 나는 그들의 글쓰기 철학에 공감하고 감동했다.


하루키가 말하는 소설가의 성품과는 다르지만, 나도 언젠가 소설에 도전해보고 싶다. 땅속에 묻힌 나만의 화석을 발견할 때까지 탐색을 늦추지 않겠다. 그러려면 조급증을 가라앉히고 세상을 찬찬히 둘러보고 곱씹고 귀 기울이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경박한 마음으로 백지를 대해서는 안 된다’


짧지만 단호한 스티븐 킹의 조언. 나는 어땠을까. 글 쓸 때 대부분 진지했지만, 경박한 마음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경박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글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어때야 하는지 두 대가에게 배웠다.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면 안 된다는 사실도.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구석에 붙여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 스티븐 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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