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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May 29. 2020

나도 고향이 생겼다!

남편도 생겼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명절이면 고향에 내려간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일을 그만둘 때도 "고향에 내려가서 좀 쉬려고"하는 말을 들으면, 갈 곳이 있어서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학교도, 직장도 모두 서울 집 근처로 다녔던 터라 딱히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애틋한 곳이 없어 아쉬웠다.


지금은 다르다. 나에게도 고향이 생겼다. 그 이름도 아름다운 스페인 바르셀로나.


2016년, 나는 처음으로 혼자서 떠나는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길치에, 영어도 능숙하지 않아서 겁이 났지만 호기심이 겁을 이겼다. 여행을 좀 다녀본 나의 베프는 예전부터 "너는 스페인을 좋아할 거 같아"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왜?"라고 물어보면 "그냥 너랑 어울려"하고 싱거운 답을 했다. 그녀의 안목을 믿고 나는 스페인으로 떠났다.


원래 여행 계획은 2주였다.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스페인 남부인 안달루시아 지역을 좀 돌다가 포르투갈로 이동, 마드리드에서 아웃하는 일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게 빡빡한 일정이다. 일주일 동안 바르셀로나만 다녀도 모자랄 판에!

일정을 넉넉하게 잡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 때, 내가 묵던 호스텔 주인이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툭 던졌다.


"한국인 스텝이 필요한데..."


"어? 제가 해도 돼요?"


"선영 씨가 해주면 너무 좋죠. 근데 다른 도시로 넘어가잖아요?"


"다시 돌아올게요!"


그리하여 나는 다른 도시를 다 돌고 다시 그곳, 바르셀로나 까미노하우스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까미노하우스를 찾는 손님은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이 7:3 정도 됐다. 나는 그들의 체크인-아웃을 돕고 동네 맛집을 소개해 주었으며 조식을 세팅했다. 때로는 침대를 정리하는 일도 도왔다. 그 대가로  조식과 잠자리를 제공받았다.


매일 아침 차려냈던 카탈루냐 식 조식 / 체크인 카운터


나는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으로 까미노하우스에서 살았다. 할 일을 마치면 한량처럼 계획 없이 바르셀로나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컴컴한 고딕 지구를 구경했고, 바르셀로네타 해변까지 걸어가서 모래사장에 누워있었다(누워있는 건 항상 좋다). 몬주익 언덕 뒤 편 클라이밍 짐에 회원권을 끊어 매일 클라이밍을 하러 다녔고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었다. 마트에서 쌀과 육수, 해산물을 사와서 빠에야를 만들어 먹었다. 동네 카페에서 코르타도를 마시며 현지인들과 함께 영어 회화를 배웠다. 심심하면 플라멩코를 보러 갔다. 핀초스 바에서 에스뜨레야 맥주를 원 없이 들이켰다. 이탈리아에서 온 레즈비언 친구와 바르셀로나 근교인 타라고나에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숙소 주인 부부는 클라이머다. 그들과 몬세라트에서 등반을 했다. 그야말로 꿈 같은  두 달이었다.


그리고 작년 10월, 고향을 다시 찾아갔다. 바르셀로나에서 썸을 탔던 그 남자는 남편이 되었다. 나의 고향을 함께 밟으며 우리의 시작을 조곤조곤 더듬어보았다.




쓰다 만 글.

언젠가는 완성해야 할 나의 고향 이야기.




#아바매글

#아무리바빠도매일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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