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못 가니 추억이라도 되새겨보자
여행에서 먹는 재미를 빼놓기 힘들다. 특히 그 지역에서만 나는 식재료이거나 특이한 방식으로 조리한 음식은 꼭 먹어보는 편이다. 나는 웬만하면 가리는 음식이 없다. 꼬리꼬리한 피시소스를 곁들인 동남아 음식이나 고수가 들어간 똠얌꿍도 없어서 못 먹는다. 간이 하도 세서 '씬 쌀'(소금 빼주세요)을 꼭 외워가라는 스페인 음식은 나의 최애 음식이기도 하다.
겨울에 스페인을 가면 꼭 먹어 보아야 하는 음식이 있다. '칼솟타다'라 불리는 대파 구이다. 마침 내가 바르셀로나에 갔던 때가 겨울이었고, 호스텔 주인이 칼솟 요리를 잘하는 곳을 추천해 줬다. 카탈루냐 박물관 뒤 편에 있는 경마장 옆 레스토랑 la foixarda (라 포이사드라), 이곳은 스테이크 맛집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양념 취급하는 파를 메인 요리로 먹는다는 게 생소하지 않은가. 설렘 반, 의구심 반으로 호스텔 친구와 각자 스테이크, 그리고 나눠먹을 칼솟타다 1인분을 시켰다. 잠시 후 나온 대파 구이의 비주얼은 말 그대로 충격! 새까맣게 탄 대파가 아무 양념도 안 된 채 통으로 기왓장에 담겨 나온 것이다.
배가 불룩 나온 식당 종업원은 우리의 놀란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칼솟타다 먹는 방법을 설명해 줬다. 물론 보디랭귀지로.
<스페인 겨울 별미, 칼솟타다 먹는 법>
1. 비닐장갑을 손에 끼운다.
2. 까맣게 탄 파의 겉껍질을 벗겨낸다.
3. 로메스코 소스에 푹 찍어
4. 한 입에 쏙! 크게 배어 먹는다.
옷에 소스가 떨어질 수 있으니 입을 하늘로 벌리라며, 고개를 젖혀서 먹는 시늉까지 보여줬다. 마치 손으로 겉절이를 쭉 찢어서 먹듯 말이다. 그가 알려준 대로 대파를 소스에 푹 담갔다가 조심스레 빼어서 입에 쏙 넣었다. 소스는 우리나라 쌈장 색깔과 똑같았는데 토마토와 올리브, 견과류 등이 들어간다고 했다. 달큼한 대파의 향과 감칠맛 나는 소스가 어우러져 입안 가득 고소한 풍미가 넘쳤다.
곧 후회했다. '더 시킬걸...'
옆 테이블을 보니 역시나 '1인 1파'더라. 아 여기서 1파는, 한 단을 의미한다!
3년 후, 다시 운 좋게 바르셀로나 여행을 갔지만 겨울이 아니라 칼솟을 먹지 못했다. 내 생에 또다시 스페인에 갈 날이 올까? 가능하면 겨울이었으면 좋겠다.
해외여행은 기약이 없고 더위가 기승인 지금, 굳이 스페인 겨울 별미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방치된 브런치에게, 혹시나 글을 기다렸을 독자님께 너무 미안해서 뭐라도 써야했을 거 같다고.
저는 보이지 않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