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이걸 입었지? 분명 연애할 때는 착 달라붙는 드로즈였는데 말이지... 그것도 무려 캘빈클라인씩이나입던 사람이(TMI)'
쥐도 새도 모르게 아재 취향으로 갈아탄 남편이 참 귀여우면서도 그 탁월한 선택에 공감이 갔다. 몇 달 전, 발사할 듯한 뽕이 들어간 와이어브라를 죄다 갖다 버린 일이 떠오른 것이다. 속이 다 후련했다. 남편도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브래지어를 처음 착용한 게 중학교 때 즈음이었으니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을 게다. 특히 성인이 된 뒤로는 뽕은 물론이요, 가슴 아랫부분을 받쳐주는 U자형 철사가 들어간 와이어브라를 줄곧 입었다. 당연한 줄 알았다. 시중에 파는 대부분의 브래지어엔 와이어가 들어있었고, 그것이 가슴 모양을 예뻐 보이게 해 준다고 하니 답답하고 짜증이 나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친구와 밥을 먹던 중 명치 부근이 뜨끔뜨끔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찌르는 듯한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이 느낌은 분명...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범인은 '와이어'였다. 브래지어 천을 뚫고 나온 철사가 내 몸을 공격하고 있었다. 불쑥 삐져나온 한쪽 끝을 잡고 쭉 잡아당겼다. 제 몸에 꽂힌 검을 뽑는 전사가 된 심정으로! 2mm 정도 굵기의 U자 모양의 철사가 제 멋대로 휘어져있었다. 섬뜩했다. '그래, 버릴 때가 됐지.' 나는 그날 밤 그 브래지어를 버렸고, 다음 날 새 것을 샀다. 물론 와이어가 들어있는 것으로.
그러다 작년에 “와이어 없이! 후크 없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 라디오 CM송을 듣고 와이어가 없는 브래지어인 브라렛을 처음 알게 됐다. 와이어가 없으면 운동을 할 때 입는 스포츠 브래지어처럼 못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색깔도 소재도 다양했다. 희귀한 연보라색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전체가 레이스로 장식된 것도 있었고, 골지 재질로 베이식한 디자인도 있었다.
처음엔 가장 후기가 많은 걸로 샀다. 일단 시도나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서랍장 속에 수북한 와이어브라에는 손도 대지 않는 사실을 깨달았다. 6개월 넘게 브라렛만 고집한 것이다. 갈비뼈의 자유를 맛본 후부터 와이어브라로는 손이 안 갔다. 심지어 와이어브라는 생김새도 못나 보였다. 눈이 툭 불거진 안경 같다고 할까. 나는 서랍 속 공간을 차지하는 갑옷들을 죄다 버리기로 결심했다. 혹시 봉긋한 가슴이 필요한 날이 있을지도 모르니 하나만 빼고(이 또한 1년 가까이 입지 않은 걸 보아 곧 폐기처분이 예상된다).
화려한 푸시업 브라의 상징인 세계적인 란제리 기업 ‘빅토리아 시크릿’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와이어리스 브라로 갈아타는 여성이 나만은 아닌 듯하다. 한때는 속옷으로 빈약한 가슴을 감출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아주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다운 몸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안다. 거울을 봐도 자연스럽고 뭔가 쿨 해 보이기까지 하다(?). 입어도 입은 것 같지 않다. 활동이 편하니 마음도 편하다. 전혀 이질감이 없는 브라렛과 남은 40년(!)을 함께 할 예정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집에만 있는 요즘은 그마저도 쓸모가 없다. 예쁜 브라렛을 입고 어서 외출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