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난리다. 걸릴 확률이 미약하더라도 그게 나나 내 가족이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최악의 경우 목숨까지 앗아가기도 하니까. 바이러스는 모두 그렇게 무서운 존재일까.
홍역이나 수두처럼 백신이 있는 바이러스도 있다. 감기처럼 살짝 스치고 마는 바이러스도 있다. 혹시 ‘헤르페스 바이러스’라고 들어보았는지. 입술포진, 단순포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생소한 그 이름과 달리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바이러스의 보균자로 알려져 있다. 과로를 했을 때, 밤을 새우거나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을 때, 감기 열병을 앓고 났을 때 혹시 입술 주변에 물집(작은 수포들)이 잡힌 적이 있다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확률이 높다. 다행히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생명을 위협하진 않는다. 하지만 잦은 재발로 삶의 질을 망가뜨린다.
헤르페스 바이러스 확대 모습. jpg
언제 누구에게 감염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증상이 중학교 때부터 나타났다. 코밑이나 윗입술 가운데, 혹은 입꼬리에 어느 날 불쑥 나타나 물집이 생겼다. 아픈 건 아니지만 보기 흉했다. 근질근질해서 영 성가시다. 보통 무기력증을 동반한다. 약국에 가니 ‘아시클로버’라는 연고를 줬다. 하필 위치가 그렇다 보니 꼴이 콧물이 말라붙은 ‘영구’ 같다. 그나저나 요즘 친구들이 영구를 알려나.
아무튼 새하얀 그 연고(누가 투명한 연고 개발 좀)를 바르면 물집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멈춘다. 딱지가 떨어지고 흔적이 완벽히 사라지기까지 최소 2주다. 더 고약한 건, 코밑에 녀석이 이제 막 사라졌는데 입술에서 다시 뿅 하고 고개를 내미는 거다. 미칠 노릇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연속 네 번 까지 부위를 옮겨가며 이 물집이 생긴 적이 있다(코 밑-입술 위-입꼬리-다시 코 밑..). 두 달 동안 마른 콧물을 바르고 다니는 20대 여성. 불쌍하지 않은가.
부위가 얼굴이다 보니 신경 쓰이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어? 너 입술에 뭐 묻었는데?’하면, ‘아 연고 발랐어~’ 하고 말겠지만 한창 예쁘게 꾸미고 싶은 나이였다. 어렵게 소개팅이 잡혔는데 망할 바이러스 때문에 취소한 적도 있다.
지긋지긋한 입술포진, 막을 수 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바이러스가 세균과 무엇이 다른 지, 어쩌다 전염이 되는지, 대처 방법은 없는지 하나하나 깨우쳐 갔다.
그러다 3년 전쯤, 약 4만 명이 가입한 헤르페스 환우 커뮤니티를 발견했다. 가입을 해서 정보를 얻는 게 좋겠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바이러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알고 보니 이 바이러스의 유형은 두 가지였다. 입술에 나타나는 1형과 생식기에 나타나는 2형이다. 1형의 경우 세계 인구 10명 중 7명꼴로 감염돼있다는 보고도 있다. 2형 보균자 중에는 잦은 재발에 우울증 약을 먹거나, 자살 충동까지 느낀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무엇이 재발 방지에 좋다더라’를 활발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잠잠하다가도 면역력이 떨어지면 올라오니, 일단 규칙적인 생활은 필수다. 나는 하나하나 읽어보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시도해볼 만한 것을 취했다. 그리고 스스로 실험해봤다.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온 이상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니, 보다 현실적인 방법은 조짐이 보이는 즉시! 해야 하는 행동 수칙에 있었다.
그러려면 먼저 조짐을 알아야 한다. 보통 입술 근처에 수포가 나타나기 하루 전쯤 한쪽 눈 밑이 따끔거린다. 안면 신경절에 숨어있던 바이러스가 곧 활동 개시를 한다는 뜻이다. 얼굴에 불편한 감각이 생기고 나면 어김없이 다음날 녀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신호다.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파우치에 아시클로버 연고를 매일 넣고 다닌다(두통약과 함께). 수포가 올라오는 낌새만 생겨도 연고를 바른다. 그러면 더 이상 수포가 생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타이밍이 관건이다. 물집이 없어도 약간 붉어지는 듯(보통 가려움도 동반한다) 하면 바로 연고를 도포한다.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는 셈이다.
또 하나의 예방법은 그런 조짐이 느껴지면, 비타민C를 고용량으로 먹는다. 보통 하루 권장량이 100mg인데 시중에 파는 비타민C는 1000mg 알약이 많다. 나 같은 경우 두 세알을 먹는다. 그러면 다음날, 확률적으로 안 올라올 때가 많다. 영양제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이 부분만큼은 효과를 봤기 때문에 비타민C는 권하는 편이다. 평소에도 비타민C 한 알을 챙겨 먹고, 조짐이 오면 두 세배를 챙겨 먹는다.
반면, 먹지 말아야 할 성분도 있다. 바로 아르기닌이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르기닌은 혈관 확장 기능이 있어 순환 관련 질환을 개선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헤르페스 바이러스의 먹잇감이 되어 활동을 촉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르기닌 영양제를 먹는 것은 물론, 함량이 높은 음식도 피하는 게 좋다. 육류, 견과류, 굴, 새우 등이 있다.
열감기나 몸살을 앓은 뒤에도 종종 증상이 나타난다. 즉 피부 온도가 높아지는 것도 바이러스가 나타나기 좋은 환경이다. 그래서 조짐이 느껴질 때는 알로에 등 차가운 겔을 얼굴 표면에 발라 피부 온도를 낮춘다. 물을 많이 마시고, 잘 때 춥게 자면 안 된다. 햇빛에 반응한다는 연구도 있으니 얼굴에 직사광선을 맞지 않는 게 좋다.
'입술포진' 조짐과 대처법
눈 밑, 한쪽 얼굴이 따끔거리거나 저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코밑이나 입 주변이 가렵고 붉게 변한다.
즉시 '아시클로버'연고를 바른다.(항상 지참, 특히 여행 갈 때 등 몸이 피로해지기 쉬울 때 잊지 말 것!)
비타민C를 고용량으로 먹는다.
육류, 견과류, 굴, 새우 등 아르기닌 성분이 많은 음식을 피한다.
얼굴을 차갑게 유지하고 햇빛을 쏘이지 않는다.
물을 많이 마시고 따뜻하게 잔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냐고? 파우치 속 연고가 딱딱하게 굳어갈 정도로 재발이 없는 상태다. 재발해도 즉시 연고를 바르거나 비타민C를 먹으면 되니 걱정할 것 없다.
<입술포진 발생 시 주의할 점>
- 연고를 바를 타이밍을 놓쳐 이미 입술에 수포가 올라왔다면 피부과에서 먹는 약을 처방받는다. 수포가 커지는 걸 그나마 막을 수 있다. 수포가 올라왔을 때 바이러스의 전염력이 강하다고 하니 키스는 금물! 수건도 따로 쓰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