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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Oct 27. 2020

나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다

나팔관 허세


나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다. 아이를 갖느냐, 딩크로 사느냐.


결혼 3년 차, 여전히 고소하게 깨 볶는 중이라 무료함은 없지만 불현듯 내 나이를 실감할 때가 있다. 밤을 새우면서 일하고 놀던 체력은 사라진 지 오래. 얼굴엔 자글자글한 잔주름이 가득하고 새치가 공격적으로 올라온다. 생리주기와 기간도 짧아졌다. 부정하고 싶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노화의 습격을 받고 있다.


지금껏 아이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생기면 낳는 거지'하고 남 일 보듯 했다. 그런데 내가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 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남편은 아직 30대 초반이지만 나는 후반을 달려간다. 우리 가족 형태를 계획할 때가 됐다. 어쩌면 조금 늦은 감도 있다.


남편은 늘 그랬듯 내 뜻을 존중한다. 평소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한참 꿈을 향해 달려가는데 장애물이 될까 봐 걱정하는 듯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 조카를 볼 때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리고 침이 고일만큼 달콤하지만, 우리 나이쯤 되면 다 알지 않는가. 육아에 얼마나 큰 희생이 따르는지.


가만, '우리가 아이를 못 낳을 몸'인데 애먼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닐까. 1년 넘게 피임을 안 해도 아이가 안 생기니 말이다. 그렇다면 괜히 앞서 출산을 고민할 필요 없지. 몸 상태를 알아보는 게 우선이다.



난생처음으로 '난임 검사'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장막걷어내기분이었다. 인공수정이니 시험관이니 냉동난자니, 생소한 용어들이 튀어올랐다. '됐고, 검사는 뭘 하느냔 말이야'


여성은 호르몬 검사와 함께 '나팔관 조영술'이 필수라는 글을 읽었다. 나팔관이라 하면 난소와 자궁을 연결하는 부위인데 이곳이 막혀있으면 임신이 어렵다고 했다. 그곳에 조영제를 투입해 폐쇄 여부를 확인한다고. 연관 검색어가 눈을 사로잡았다. '나팔관 조영술 통증', '나팔관 조영술 지옥문'. 후기들을 읽어보니 이거 장난이 아닌데!


"그게 그렇게 아파?"

"누가 내 자궁을 불태우는 줄 알았어. 세상에 살면서 그런 고통은 처음이었어"

"검사하기 전에 진통제 먹으면 안 돼?"

"진통제고 뭐고 다 소용없어. 그냥 죽는다니까"


얼마 전 그 검사를 받았다는 친구의 따끈따끈한 제보. 진통제가 소용없다면 굳이 먹을 필요가 없다. 5분 정도면 뭐 길지는 않네. 무식하고 용감하게 진통제 하나 먹지 않고 내 발로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을 빠져나올 때, 나는 천하무적이 됐다. 겁나 세졌기 때문이다!



항생제 주사를 엉덩이에 맞고, 방사선실로 들어갔다. 엑스레이를 찍는 기계 위에는 기저귀가 올려져 있었다.


"저기에 엉덩이를 대고 누우세요"


간호사의 말에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굴욕 자세로 다리를 벌리자 움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간호사는 약물이 들어가면서 점점 아파질 건데 참아야 한다고 했다. 진짜 죽을 거 같을 때만 얘기하라고 했다.


20초쯤 흘렀을까? 불지옥이 시작됐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숨이 가빠졌다. 불쏘시개가 내 아랫배 속을 휘젓고 다니는 기분. 으으!!! 나는 비명을 지르고 몸을 꿈틀거렸다. "안돼요 좀만 참아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 나는 출산에 임박한 산모처럼 후하후하!! 호흡을 거칠게 내쉬다가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으으으으으!!!! 양쪽 관자놀이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누군가는 쇠 굽으로 자궁을 짓이기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참으로 적절하다. 살다 살다 그렇게 끔찍한 통증은 처음이었다.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 이러할까? 온몸은 식은땀에 젖어 축축했다.


회복실로 기다시피 들어가 누웠다. 아랫배는 계속 뒤틀리며 쿵쾅거렸다. 속은 메슥거리며 토할 것만 같았다. 혼자 온 걸 후회했다.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집까지 가지? 하지만 이 끔찍한 병원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나는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진료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아이를 낳지 못할 몸은 아니란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니 세월을 흘러 보내느니 난임시술도 고려하라고 했다. 의사의 말이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고통의 여운은 두 시간여 계속됐다.


나는 집으로 오면서 다시 '나팔관 조영술 vs 출산 고통'을 검색했다. 나팔관 검사는 출산에 비하면 껌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고통이 존재한다고?' 충격적이며 허무했다. 나팔관 조영술을 진통제 없이 견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언니 같았는데 하찮아졌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모든 어머니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 차이를 알게 됐다. 병원을 수시로 들락거리고 스스로 배에 주사도 놓아야 한다고 했다. 보통 힘겨운 여정이 아니었다. 점점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조금 더 고민해보려고 한다. 다만 나팔관 조영술을 또 한 번 하라고 하면 임신을 포기하겠다. 모르니까 한다는 말이 정확하다. 출산도 모르고 한 번은 하겠지만, 둘째 셋째를 낳는 엄마들은 정말 놀랍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극한의 고통을 잊게 하는 걸까.


아이는 한 번 낳으면 되돌리지 못한다. 직장처럼 마음에 안 든다고 때려치우지도 못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결정이다. 나팔관 검사 하나로 지옥을 맛보고 허세를 내뿜는 철부지인 내가, 과연 엄마가 될 자격이 있을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을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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