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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an 18. 2021

버려진 연구실-1

형호는 나보다 세 살 위였다.


“형호야, 학부 연구생이다. 석사도 우리 연구실로 오게끔 잘해줘라.”


교수님은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치더니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비뚤어진 입 꼬리, 동굴처럼 컴컴한 입속에서 금니가 번쩍거렸다.      


교수님이 나가자 형호라는 사람은 손을 들어 ‘까딱까딱’ 이리 오라는 시늉을 했다. 살집은 조금 있었지만 호남 형이었다. 피부가 창백해 브라운 뿔테 안경이 도드라졌는데 묘하게 귀티가 흘렀다. 굳이 따지자면 아나운서 스타일이라고 할까. 초면에 강아지 부르듯 손을 까딱거리는 젠틀함은 아나운서와 거리가 멀지만 말이다.     


“저 쓰레기통 옆에 빈자리 보이죠?저기 앉으면 되는데. 하. 내가 82년생이거든. 나보다 어리죠? 편하게 말 놓을게.”     


그는 내 이름과 나이를 묻는 대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턱끝으로 내가 앉을 책상을 가리켰다. 나는 잠시 이 상황을 해석하느라 멀뚱히 서있었다.     


“뭐해 안 가고?”     


태어나서 처음 마주친 동물을 본 듯한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보더니 그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대학원에 가면 온갖 싸이코 패스 인간 군상을 만날 거라는 과 선배의 농담 섞인 말이 떠올랐다.     


연구실은 비현실적으로 고요했다. 가끔씩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적막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학창 시절, 천사 같았던 담임선생님이 돌변하여 분필을 집어던졌을 때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었던 공기를 기억한다.     


그 이유가 형호 때문이라는 건 자리에 앉은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알게 됐다.     


연속해서 들리는 둔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 형호는 한 남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내가 주어 다음에 조사 뭐 나와야 한다고 했어.”

“은는이가..”

“은는이가아? 이 새끼가 까마귀 고기를 쳐드셨나.”     


같은 랩 학생이 분명한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뒤통수를 내어주고 있었다. 내리칠 때마다 고개가 덜컹거렸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쳐다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모두가 약속한 듯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마우스가 딸각거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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