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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11. 2021

메타버스에서 인종차별 당했다

삼십대 후반의 메타버스 첫 경험 후기


온라인 3차원 가상 세계를 이르는 메타버스. 대충 어떤 개념인지만 알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하나둘 시작하는 사람이 있어 호기심이 일었다. '제페토'는 입문자(?)에게는 조금 복잡한 거 같아 '이프랜드' 앱을 깔았다.


아이디를 정하고 아바타를 정해야 한다. 얼굴형, 코 모양, 입술, 안경, 패션까지 선택지가 세세했다. 이런 것에 깨알 재미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머릿속에 지진이 나는 터라 기본 아바타 중 그나마 나와 비슷한, (혹은 워너비) 이미지를 골랐다. 구릿빛 피부에 찰랑이는 단발, 크롭티를 입은 운동 좀 는 건강미 넘쳐보이는 친구였다. 현실세계에서는 엄두를 내기 힘든 눈 밑 타투도 마음에 쏙 들었다.



아바타를 만들고 나니 다양한 룸(랜드)이 보였다. 전망 좋은 루프탑, 도란도란 공연장, 콘퍼런스 홀, 캠핑장 등 공간마다 주제가 있어 관심 가는 곳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들어가면 각자의 개성으로 꾸민 귀여운 아바타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희로애락 감정표현뿐만 아니라 춤을 추거나 엄지 척, 손 하트까지 수십 가지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클럽하우스처럼 아바타 주인들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처음 들어간 방은 아이리쉬펍이었다. 네다섯 명이 모여있길래 방향키를 움직여 근처로 다가가 봤다. 마침 자기소개를 하는 모양이다.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열다섯 살이요. 몇 살이에요?", "저는 열일곱 살이에요. 여기 어른도 있어요?" 나도 모르게 나가기 버튼을 꾹 눌렀다.


MKYU 김미경 학장님의 방도 들어가 봤는데 녹화 하이라이트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없지만 아바타가 화면 영상을 공유하며 강의를 소개하고 있었다. '오, 이거 획기적인데' 녹화영상을 활용하면 내가 직접 일하지 않아도 아바타가 대신 일할 수 있는 세계가 오겠구나!


문제는 세 번째 방을 들어갔을 때였다.  나는 구경차 들르기도 했고 딱히 할 말이 없어 참관 중이었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있었다. 남자 두 명은 상큼한 아바타와 달리 목소리가 걸걸했다. 40대 남성 같았다. 여자는 어려 보이는 목소리였다. 여자 아바타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자, 걸걸한 남자가 '이년 춤추는 거 봐라 장난 아니네'하고 말했다. '처음 보는 사이 같은데 저런 식으로 말을 하나?' 인상을 찌푸리던 찰나, 걸걸남이 내 아바타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야 글밥, 오디오 켜. 오디오 켜라고."


'아, 여기는 오디오를 무조건 켜야 하는 방인가?' 하지만 나는 오디오를 켜는 방법을 몰랐다. 아무리 아바타라지만 초면에 반말도 기분이 몹시 나빴다.


"야 오디오 안 켜? 이 깜둥이 같은 년아 오디오 켜라고."


귀를 의심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방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강퇴를 당한 것이다.


나는 면전에서 욕을 먹은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쾌했다. 메타버스에서 아바타는 나와 다름없다. 이년 저년도 끔찍한데 아바타 피부색을 보고 깜둥이라니, 세상에 이런 몰상식한 인간을 봤나.


생각해보니 메타버스에서는 현실세계보다 몰상식한 사람을 만나기 좋은 환경이었다. 얼굴과 이름이 드러나는 현실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한다. 일상생활에서, 예를 들어 회사나 도서관, 서점, 카페, 강연장에서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로그아웃하면 끝나버리는 메타버스에서는 아바타라는 가면을 쓰고 현실에서는 못하는 언행을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메타버스는 무법천지였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고' 버튼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차단하기' 정도가 다였다. 한 메타버스 플랫폼은 이용자의 70%가 10대라고 한다. 이들이 나와 같은 상황을 겪으면 더욱 상처 받지 않을까. 나는 걱정이 되어 메타버스 범죄를 검색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바타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성희롱을 하거나 목소리로 욕설을 하는 문제가 심심찮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메타버스에서 청소년을 꼬드겨 오프라인 범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단다.


물론 비대면 시대에 온라인에서 실감나게 모임을 할 수 있고, 질 좋은 세미나에 참여하거나 마케팅에 활용, 기술 테스트, 수익으로의 확장 밝은 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이버 범죄에 대비책은 마련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아 아쉬웠다.


메타버스 플랫폼의 영향력이 얼마나 오래 갈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잠깐의 체험만으로는 기존의 게임과 크게 다른 점을 못 느꼈다. 클럽하우스에 비디오만 더해진 느낌이었다. 물론 이제 시작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계속 진화하겠지만 지금으로써는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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