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어젯밤 잠들기 직전까지 나는 희망으로 부풀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또 좌절했다. 좌절과 희망을, 아니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는 요즘의 내가 한심스럽다.
연말이라 그럴까, 마음이 단단하게 고정되지 못하고 바다 위 부표처럼 표류한다.
희망이란 이런 것이다. 코를 골며 자는 남편 옆에서 스마트폰 조명을 최소한으로 낮추고 남들이 사는 세상을 구경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일 생각에 빠져드는데, 내년부터는 글쓰기 모임에 이런 커리큘럼을 넣어야지, 수강생에게 만족을 주려면 이 또한 시도해봐야겠다! 그러려면 공부할 게 뭐가 있냐면... 밤만 되면 정신이 말똥말똥한 올빼미는 우르르 쏟아지는 아이디어가 달아날 새라 계속해서 엄지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스마트폰에 메모한다.
'천재인가. 이런 아이디어는 내가 처음일걸!'
내일부터 당장 실행해야지, 시도해볼 만한 다양한 아이디어, 읽을 책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다 못해 웅장해진다. 눈알이 따갑든지 말든지 머릿속 상념은 계속해서 제 몸을 키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뇌에 과부하를 일으킨다. 베개맡에서 어슬렁거리던 잠 기운은 '하는 꼴 보아하니 오늘도 텄네 텄어' 혀를 끌끌 차며 침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결국 또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괜찮아, 내일부터 정말 멋진 날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절망이란 이런 것이다. '젠장! 왜 또 아홉 시가 넘었냐고.' 오전 8시에 넉넉하게 맞춘 알람조차 지키지 못한 날이 벌써 며칠째. 종달새로 살겠다고 오전 여섯 시 기상 미라클 모닝에 도전했다가 2주 내내 입술 포진을 달고 살았던 과거를 떠올리며 합리화한다. 몸이 못 일어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야.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니 됐어.
그래, 밥을 먹어야지.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야. 인스턴트 팟에 북어포를 넣는다. 마른미역 몇 조각을 넣고 물을 붓는다. 어간장 한 스푼 넣고 수프 모드 20분 버튼을 누르면 끝. 효자가 있다면 이런 기분인가. 올해 산 물건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녀석에게 감사를 느끼며 수선집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 몇 시에 옷 찾으러 가면 되나요?"
"아, 제가 오늘 오시라고 했던가? 아직 못했는데, 급해요?"
"맡긴 지 한참 됐는데. 3일 전에 맡겼어요."
"3일은 한참이 아니에요."
"어쨌든 오늘 찾아가라고 하셨잖아요."
"아직 오늘이 안 지났어요."
"(말장난 하나) 몇 시에 가면 돼요?"
"한 7시... 아님 내일 오전은 어때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전화를 끊는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인가. 자기 일에 그렇게 주인의식이 없어서야 되나. 요즘 같은 시기에 저런 식으로 장사해서 단골 관리가 되나. 늦잠으로 시작한 불쾌한 감정은 수선집 주인에 대한 비난과 원망으로 발전한다. 그러고 보니 맡길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지역화폐 카드를 내밀자, "카드예요? 아이참 요즘은 카드 때문에~" 하며 구시렁거리던 주인이었다. 그럴 거면 출입문에 '지역화폐 환영'스티커는 왜 붙여놓은 것인가.
참참, 어제 기록했던 아이디어를 살펴볼까. 메모 앱을 열고 눈을 의심한다. 너무나 형편없음에. 자신 없음에. 이상하다. 분명 어제 생각했을 때는 괜찮았는데. 모두 할 수 있을 거 같았고 자신감이 충만했는데. 나는 왜 이모양인 것인가. 수선집 아줌마를 탓하기 전에 자신과의 약속도 못 지키는 너부터 반성하라!
미역국이 다 됐다. 밥을 말자. 좌절은 다시 침대 위에서 몽글몽글 희망이란 탈을 바꿔 쓸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