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있는 힘을 다 주며 박박 문질러댔다. 그림책 위로 지우개 가루가 때처럼 일어났다. 낙서만 지우려고 했는데 삽화 색깔까지 바래졌다. '이제 얼마나 남았지?' 남은 페이지를 가늠하다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시 도서관에서그림책을 빌렸다. 문해력 강사로 초등학생 아이들 대상으로 수업자료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나는, 그림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아주 어릴 적에 읽었던 <신데렐라>, <백설공주> 이후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직업상 읽어야 하는 책이 넘쳐났고 모처럼 여유가 생기면 어김없이 소설을 찾았으니 말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권씩 펼쳐보기 시작했다. 내가 빌린 그림책 네 권은 저마다 아름답고 개성 있는 그림체, 훌륭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싱글벙글하며 흥미롭게 책장을 넘겨보고 있는데 우장창 동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돼지책>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그림책 첫 장을 열었을 때였다.
첫 장에는 단란한 가족 일러스트가 있었다. 바로 옆에는 괴상하게 웃고 있는 3등신 여성의 나체가 그려져 있었고 '하응', '꺅~'하는 의성어가 삐뚤빼뚤하게 적혀있었다. 다음 장을 넘기자 남자 인물 일러스트 하반신마다 성기가 덧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의 소행이었다. 고양이 그림 옆에 '고양이 고기', '내가 누군지 모르지 바보 새끼야'라는 낙서는 그나마 귀여운 수준이었다. 한두 장도 아니고 매 페이지마다 징그러운 그림과 여성 혐오가 가득한 글자들이 득실거렸다.
책 내용에 집중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내가 한 낙서도 아닌데 그냥 반납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 책을 다른 사람도 빌릴 것이고, 특히 어린이가 본다고 상상을 하면 끔찍했다. 나는 온 집안을 뒤집어서 지우개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낙서 내용으로 보아 초등학생이 분명한데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내가 요즘 아이들을 잘 몰랐던 걸까. 얼마 전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야구 동영상이 감명 깊었던 것일까. 엄마가 억지로 책을 읽으라고 해서 짜증이 났을까. 아이 아빠가 엄마를 함부로 대하나?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치기 어린 장난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 자식도 아닌데 마음이 심란했다.
그림책을 한 장씩 넘기며 지우개로 낙서를 지우는데 짜증스러웠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볼펜이 아니라 연필인 게 어디야'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이는 낙서를 했지만 지울 수 있는 연필을 사용했다. 책을 아예 망가뜨리는 건 안 된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누군가는 지우겠지'하며. 나는 볼펜 대신 연필로 낙서를 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봤다.
물론 연필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 짓을 했을 테지.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고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겠지. 그러고 보니 딱한 마음도 들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나는 모르는 사람을 쉽게 판단 내리곤 했다. 가령 길바닥에 피우던 담배꽁초를 아무렇지 않게 버린다거나 가래침을 뱉는 사람을 보면 보나 마나 무식하고 상종 못할 인간이라 결론지었다. 더 알아볼 것도 없이 인성이 불량할 것이다라고 단정 지었던 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성급하고 위선적인 내가 보였다. 나의 아빠가 길거리에 가래침을 뱉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나의 아빠는 상종 못할 인품을 지닌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완벽한 사람인가. 언제 어디에서나 남이 보든 안 보든 양심적인 행동을 했던가. 한산한 골목길에서 빨간불인데 길을 건너자는 남편에게 무안을 주고는 혼자서 산책을 할 때는 수시로 무단횡단을 했던 나 아닌가.
애초에 아주 착하고 아주 못되기만 한 인간이 존재할까. 조각 같은 장면 하나로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려 했던 나에게 경고등을 켰다. 아무리 깜깜해도 밝은 면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림책에 연필로 낙서를 한 그 아이, 오늘 학교에서 잘 놀다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