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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May 12. 2022

갑자기 치밍아웃

도돌이표 같은 인생

1. 

작년 봄, 출간을 2주 앞두고 허리디스크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다. 이미 20대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한 차례 한 바 더 이상의 수술은 무의미했다. 한 동안 복대를 차고 걸어 다녔고, 도수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차차 회복했다.


2. 

작년 가을, 나는 주기적인 허리 통증이 생리주기와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순한 디스크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자궁내막증이 생기면 장기들이 유착되면서 허리가 불편할 수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간단한 줄 알고 호기롭게 했던 복강경 수술 후유증으로 석 달간 끔찍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수술 시 복부에 주입한 가스가 온몸을 돌아다니는 '가스통'때문에. 가스는 날카로웠다. 배도 찌르고 쇄골도 찌르고 막무가내였다. 기침 한 번 할 때마다 시뻘건 지옥 구경을 했다.


3. 

복강경 수술을 하면서 내 몸은 항생제에 담뿍 절여졌다. 수술이란 게 그렇더라. 아무리 소소해도 항생제와 진통제를 한 동안 달고 살아야 하니 그 후유증이 만만찮다. 아토피가 있던 나는 피부가 뒤집어졌고 그것을 치유하려고 바른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으로 얼굴 피부가 뱀 허물처럼 벗겨지기 시작했다. 회복하기까지 또 두어 달 걸렸다.


4. 

수술을 하면 한 동안 몸조심을 해야 하니 운동을 못한다. 나는 운동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한없이 우울했다. 수술 자체보다 수술 이후 식물 같은 생활이 정말 싫다. 어떻게든 시간은 간다. 조금씩 몸이 회복되자 나는 오랜 취미였던 클라이밍을 다시 시작한다. 너무 신난다. 필라테스도 등록한다. 이제는 건강한 몸으로 살아야지!


5. 

그리고 올 봄. 세 번째 책 출간을 한 달여 앞두고 나는 또 입원했다. 작년 복강경을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 수술은 없다고 외쳤는데 그분이 오고 말았다. 치질 수술. 이 글을 얼마나 읽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4천 구독자에게 알리는 셈인데 많이 고민했다. 그러나 병은 병일뿐 부끄러운 것이 아니니 고백하기로. 답답하고 우울했다. 글을 쓰면서 조금씩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역시 잘했다.


6.

글 쓰는 사람이라면 피하기 힘들다는 허리병, 똥꼬병을 얻었으니 나는 진정 작가로구나!


7. 

세상엔 치질 수술을 해본 사람과 아직 안 한 사람, 두 부류가 존재한다. 예비 치질러들아, 수술만은 꼭 피하길 바란다. 2주 간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 아름다운 봄, 나는 그렇게 좌욕기를 붙들고 눈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8.

나의 병원 인생은 언제쯤 끝날까. 크고 작은 치료와 수술이 내 인생에서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다. 하나를 막으면 하나가 터진다. 마치 금이 간 댐처럼. 불혹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진다. 


9. 

물론 나보다 더 큰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도 많다. 세상을 원망하자면 한 없이 원망스럽고, 감사하자면 또 감사할 일이 넘친다. 그러니 감사하기로 선택한다.


10.

1년 동안 내 x꼬와 정신을 갈아 넣은 책이 다음 주에 출간된다. 제목은 <어른의 문해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전작만큼만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이것은 욕심이다. 이런 욕심이 출간 후유증(허탈함, 우울, 미움)을 낳는다. 넣어두자.


11.

몸이 안 좋으니 우울하고 한 동안 글쓰기가 싫었다. 그런데 글 쓰는 사람이 글을 안 쓰면 큰 문제다. 글은 안 쓰면 점점 더 안 쓰게 되고 쓰면 점점 더 쓰게 되기 때문이다.


12.

그렇다면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 말이나 짧게 끊어서라도 남기다 보면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지도 모른다. '이경'작가님의 주절주절 쓰기를 한 번 따라 해 봤다. (이 글 보고 계시나요) 이경 작가님 글은 무척 재밌어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도중에 끊을 수가 없는데 내 글은 한참 멀었다.


13.

결론은 다음 주에 책 나오는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치밍아웃까지 한 마당에 뻔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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