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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ul 27. 2022

스타벅스와 신영복

가성비 흘러넘치는 가르침


스타벅스 음료 무료쿠폰 기한이 얼마 안 남았다는 알림이 떴다. 프리랜서의 장점이 무엇인가! 어디든 앉으면 그곳이 사무실이 된다. 독서모임 책으로 매일 한 꼭지씩 읽고 있는 신영복의 <담론>을 들고나갔다.


사워도우 샌드위치 하나와(역시 기프티콘으로) 신상 음료인 쑥 크림 프라푸치노를 시켰다. 아침인데도 손님이 꽤 많았다. 8번째 순서를 기다려 받은 쑥 크림 프라푸치노의 비주얼은 실망스러웠다. 절묘한 그러데이션을 뽐내는 광고 사진과는 영 딴판으로 흙탕물 빛깔이었다. 맛도 그저 그랬다. 배가 고프니 샌드위치를 우선 입속으로 욱여넣고 본다. 유튜브를 열어 '무엇이든 물어보살'을 봤다.


초간단 식사를 마치고 손이 자유로워지자 가방 속에서 <담론>을 꺼냈다. 오늘 읽을 내용은 '상품과 자본'이었다.


작년부터 신영복 선생님의 전작 읽기에 도전 중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다음으로 <더불어 숲>을 읽었다. 그다음 <신영복 평전>을 읽고 네 번째 책이 <담론>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는 이유는 그분의 성품을 닮고 싶어서가 가장 크다.


동양 고전을 '관계론'으로 풀어낸 책, <담론>은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조금 겁이 났는데 생각보다 잘 읽혔다. 그동안 신영복 선생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배경지식이 쌓인 덕분일 것이다. 무엇보다 한 꼭지를 읽을 때마다 내 눈을 덮은 더께가 한꺼플씩 벗겨지는 그 느낌이 쾌적하다.


오늘 읽은 장의 핵심은 상품의 가치는 등가교환으로 생긴다는 것이다. 가령, 구두 한 켤레 = 쌀 한 가마니처럼 교환 가치가 있어야만 상품에는 가치가 있다.  쌀은 밥이라는 정체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두 한 켤레 값으로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 1명=연봉 3천처럼, 값으로 등가 교환된다. 이런 사고는 정체성뿐만 아니라 '상품 맥락'이라는 형태로 우리 사고를 장악한다.


책 속에 나온 예시가 잘 보여준다. 의사에 준수한 외모, 고가의 외제차를 모는 남자가 고급 아파트에 산다. 그 남자의 부인은 외모가 아름답지 않고 허름한 추리닝을 입고 돌아다닌다. 동네 사람은 수군거린다.


"저들은 왜 결혼했을까. 아! 처가에 돈이 많은가 보다."


우리는 인간관계, 사랑마저 돈의 '등가교환'으로 사고한다.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머지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못한다. 그것을 이상하게 느끼게 된 것이 오늘의 수확이다.


프리랜서 작가로 팔리는 글을 써야 하는 나는 과연 얼마짜리 인간일까, 생각하니 조금 울적해졌다.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스타벅스에 앉아서 인간과 삶을 말하는, 근대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담론>, '상품과 자본'을 읽는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한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은 가벼웠는데 무료쿠폰으로 얻은 깨달음 치고는 너무나 가성비가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페를 왕복하는 동안 30분 산책을 했고 집에 가서 설거지를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이득인가.


라는 생각을 하는 것 보니 나에게 탈근대는 아주 먼 길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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