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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11. 2022

꼬마 소설가는 어떤 글을 쓸까?

나만 알고 있어야지


수요일마다 초등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방과 후 교실에서 그림책 문해력 수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나는 아이들과의 만남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대화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저학년과 고학년은 어느 정도로 다른지, 수업보다 소통 방식이 더 걱정됐다.


두어 번 수업을 하자 아이들과의 수업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80분이 쏜살같이 흘렀다. 그림책을 읽어주면 지역방송이 더 요란하다. "에이, 토끼가 어떻게 치타보다 빨라요?", "선생님, 저기 토끼 이빨이 두 개 빠져있어요.", "와 멍청한 토끼네, 나 같으면 포기한다!"


"누구 발표할 사람?" 하고 물으면 "저요! 저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한 팔을 치켜세우는 아이들이 재밌고 사랑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3학년 규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쌤 저 스토리 쓴 거 있어요"
"스토리?"
"다음 주에 한 번 가져와 볼게요!"

그림책 수업에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진지한 아이.  아무래도 자랑할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평소 활동지 작성한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특히 논리력이 훌륭했던 친구다.

다음 주, 난 당연히 규현이의 글이 기대되었고 아침부터 설렜다. 그런데 녀석이 안 보였다. 아파서 결석을 했단다.

한 주가 더 지나고 다시 수요일, 규현이가 왔다. "규현이 몸은 괜찮아?"하고 인사하자, 고개를 꾸벅하고 자리에 앉았다. 난 아직도 그 글을 기대하고 있는 게 좀 주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는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을 텐데. 굳이 물어보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수업 시작 직전, 규현이가 내 앞에 공책을 쓰윽 놓고 제 자리로 가는 게 아닌가. 그가 말했던 '스토리'였다. 피아노 학원에서 일어난 미스터리한 사건을 장별로 구성했다. 공포영화가 떠올랐다. 혼자 피아노를 치는데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고, CCTV와 경비아저씨도 등장했다.(스포 금지!) 장마다 궁금증을 일으키는 마무리에 예고편까지 적어놨다. 대단한걸.

태연한 표정으로 나는 물었다.

"규현아 이거 실제 있던 일이야?"
"아뇨, 제가 지어낸 건데요."
"너무 생생해서 진짜인 줄 알았어! 다음 이야기가 너무 기대된다 규현아. 계속 써줄 거지?"

규현이가 눈을 반짝인다. 나는 예비 소설가와 비밀을 공유한 셈이다. 영광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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